도검난무/검*사니

[야만바기리*여사니와] 깨어지다

달月 2015. 8. 3. 03:03

 

+) 2015.08.01 :초기 검 야만바기리가 깨진 충격으로....

 

+)내 포대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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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더운 날이었다. 뒤늦은 매미소리가 마당을 시끄럽게 울렸다. 귀를 어지럽히는 소리에 심기가 불편해진 그녀가 미간을 찡그렸다. 여름은 특히 귀찮은 계절이다. 온 감각이 하나하나 불편하기 그지없다. 습도에 피부는 끈적이고 옷은 감겨들고 벌레는 또 어찌나 많은지. 아주 귀찮은 것들뿐이다.

 

단도들은 심심하다며 냇가로 달려간 지 오래다. 아마 저녁 먹을 즈음이나 귀가할 게 분명했다.

 

 

“기왕 간 거 저녁거리나 좀 잡아오면 좋겠네.”

 

 

그녀는 정원이 바로 보이는 혼마루에 드러누운 채 중얼거렸다. 하루하루 식사할 거리를 생각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쇼쿠타이가 온 후론 그도 덜 귀찮아졌지만. 그런 그녀의 시야로 털레털레 걸어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가 시야를 가렸지만, 이내 그것이 밭 당번으로 남은 야만바기리임을 알 수 있었다.

 

 

“포대기야, 일 다 했어?”

 

“…몇 번이고 말하지만, 포대기가 아닙니다.”

 

“그래, 내 포대기.”

 

 

언제나 툴툴댄다 해도 첫 파트너다. 말은 곱지 않으면서 언제나 행동만큼은 순순하다. 그녀는 그의 그런 갭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결국 그녀가 마루에 뒹구는 채 손을 내밀면, 그것이 흙투성이든 피투성이든 야만바기리는 항상 그녀의 손을 맞잡아오곤 했으니까.

 

 

“밭일로 더러워진 손을 왜 잡고 싶어 합니까.”

 

 

말로는 저러면서 그녀의 손을 잡아오는 손이 뜨거웠다. 땡볕에 일했으니 그럴 만 했다.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꽤 힘겨워보인다. 그녀는 보기만 해도 더워 보이는 그의 손을 툭 놓았다.

 

 

“얼른 씻고 와. 화채 줄게.”

 

 

야만바기리는 그녀가 놓아버린 제 손을 내려 보았다. 땀과 흙으로 얼룩진 손에 희미한 냉기가 남아있다. 야만바기리는 말없이 샤워실로 향했다. 그녀는 멀어지는 야만바기리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마냥 누워 뒹굴었다. 결국 그녀는 샤워를 마친 야만바기리가 나올 때까지 혼마루 위로 널브러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02.

 

야만바기리는 옆을 보았다. 커다란 수건을 덮은 채 자는 그녀가 있었다. 덥다고 늘 틀어 올린 머리가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덥다고 투덜댈 땐 언제고 잘도 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붉은 자국이 도드라진다. 야만바기리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장식을 매만졌다.

 

우연일까? 지금 그녀가 한 것은 야만바기리가 첫 출진에서 돌아올 때 꺾어온 나뭇가지를 다듬어 만든 것이었다. 단순히 깎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게으른 그녀가 직접 만든 것이다. 그것만으로 머리장식은 야만바기리에게 있어 가치 있는 것이었다.

 

주인은 귀찮은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주제에 단기간 늘어난 검들을 보살피는 일은 비교적 바지런했다. 말이나 행동이 늘 퉁퉁거리는 면모는 있었지만 나름의 표현이었다. 야만바기리는 늘 자신이 가짜가 아니라 입버릇처럼 말할 때마다 그녀에게 등짝을 얻어맞곤 했다. 혼내는 것도 짜증내는 것도 아닌, 그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름의 방식으로 그의 마음을 편케 하는 존재였다. 이번에는 조금 욕심을 부렸지만 그녀는 결국 그 욕심을 받아주었다.

 

 

“…주인.”

 

 

그녀의 얼굴 위로 엉망인 머리카락을 걷어내며 그가 속삭였다.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내일, 출정에서 돌아오면, 꼭.”

 

 

그의 속삭임은 한여름 오후, 아지랑이처럼 허공에 일렁이며 흩어졌다.

 

 

 

03.

 

마음이 조급했다. 그녀가 만들어준 병사는 진즉 지쳐나가 떨어졌다. 야만바기리는 제 얼굴을 가리는 천을 여미며 신중하게 검을 고쳐 쥐었다. 함께 원정을 나온 이들도 힘에 겨운 얼굴들이었다.

 

검들은 공격 타이밍을 잡기 위해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 제 몸보다 큰 검을 쥔 호타루마루가 주변을 훑을 때였다. 나키기츠네의 어깨에 올라탄 여우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야만바기리!! 뒤!!”

 

 

거대한 그림자가 야만바기리를 덮은 것과 여우의 외침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야만바기리가 아차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 때, 거대한 검이 그를 향해 짓쳐들었다. 거대한 검은 칼날이 다가오는 순간이 너무도 길었다.

 

 

—포대기야.

 

 

지금 왜 그리도 듣기 싫은 호칭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지, 야만바기리는 알 수 없었다.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검들은 희게 질린 얼굴로 야만바기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야만바기리, 피해—!!”

 

 

호타루마루가 그의 검을 쥔 채 그대로 뛰어올랐다. 절박한 연둣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검이 적을 양단하기 전, 산산히 흩어지는 파편이 호타루마루의 뺨을 긁고 지나갔다. 단단할 피부를 뚫고 날이 지나가며 적의 수급이 허공을 날았다.

 

 

“하아, 하아.”

 

 

정벌은 성공했으나 호타루마루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흩어지는 적의 흔적 아래로 야만바기리의 파편이 점차 그 빛을 잃기 시작했다. 빛을 잃어가는 파편에 호타루마루는 제 분신을 떨어트렸다. 검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으스러진 채였다. 호타루는 침묵하며 그 파편을 하나하나 모았다.

 

 

“…미친.”

 

 

카슈가 숨을 헐떡이며 욕을 내뱉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다.

 

그가, 겨우, 이런 일로. 이러면, 이렇게 되면 주인은. 주인은.

 

 

“…야만바기리.”

 

 

허탈한 듯 중얼거리는 음색은 나키기츠네의 것이다. 그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쇼쿠타이기리가 거대한 천에 호타루마루가 모은 파편들을 담고 조심스럽게 묶었다.

 

 

“…귀환, 하자.”

 

 

호타루마루의 마른 음성이 더운 여름햇살 아래로 가라앉았다.

 

 

 

04.

 

“주인, 오늘은 괜찮아?”

 

“응? 뭐, 그렇네.”

 

“헤에, 오늘은 뭘 만들어?”

 

“양 많은 거.”

 

“양 많은 거?”

 

“엉.”

 

 

미다레는 건성으로 답하는 그녀의 곁을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다른 의미로 근성이 좋은 단도였다. 쌀을 막 안치려던 그녀의 손에서 그릇이 굴렀다. 물기 어린 쌀이 바닥에 흩어진 모양이 얼핏 보면 깨어진 검의 파편 같다.

 

그녀는 내심 놀랐다. 스스로의 표현이 제법 섬뜩하게 다가온 탓이었다. 검의 파편이라니. 재수 없는 표현이 나왔네. 괜히 얼마 전 무리하게 원정에 나갔던 어린 와키자시가 부서진 채 돌아온 기억이 났다. 괜히 입맛이 썼다.

 

 

“에에…, 주인, 괜찮아? 이거 치우려면 시간 좀 걸리겠네.”

 

“어, 어. 새로 씻고 만들지 뭐.”

 

 

그녀가 느릿느릿 쌀독을 향해 걸음을 옮겼을 무렵이었다. 아이젠이 쿵쾅대며 부엌문을 강하게 열어젖혔다.

 

 

“주인아! 원정 나간 검들 돌아왔어!”

 

“어라, 진짜? 나 마중갈래!”

 

 

그녀보다 먼저 반응한 미다레가 후다닥 부엌을 나섰다. 치우기 싫다고 온 몸으로 나타내는 듯 해 한숨만 내쉬었다. 평소였다면 쇼쿠다이기리에게 부탁했을 법 하지만 당사자가 혼마루에 없으니 모든 뒤처리는 그녀의 몫이었다.

 

 

“아, 귀찮아….”

 

 

 

05.

 

단도들은 당번도 내팽개친 채 원정에 다녀온 검들을 맞이했다. 원정에 있었던 무용담을 듣는 것이 어린 그네들의 낙일 법도 했다. 어린 그들이 혼마루에 모여 마당으로 들어오는 원정대를 기다렸다. 저 멀리 흐릿하게 걸어오는 인영들이 보이자마자 반갑게 발을 구르던 단도들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하였다.

 

그들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원정대의 머릿수를 확인하던 아이젠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나가 안 보이는데….”

 

“무슨 소리야. 뒤에서 따라오고 있겠지.”

 

“아냐, 하나가….”

 

 

없어.

 

 

 

06.

 

평소와 달리 조용한 혼마루의 분위기에, 그녀가 이상하다 여기며 느릿느릿 나왔을 때였다. 짜기라도 한 듯, 검들이 흠칫 놀라며 주춤거렸다. 원정에서 돌아온 검들은 다들 어딘가 다친 채였다. 수리를 해주려면 제법 바쁠 터였다.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저가 맡은 아이들이 아픈 꼴은 보기 싫었다.

 

 

“누가 먼저 수리 받을래?”

 

“…주인.”

 

“호타루가 먼저 할래?”

 

 

호타루마루에게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시간이 얼마 안 걸리니 작은 부상 먼저 보아주는 게 낫다 여기며, 그녀가 앞치마를 벗어들었다. 그녀의 부름에도 호타루마루는 침울한 기색이었다.

 

 

“호타루, 안 와?”

 

“…주인.”

 

 

호타루마루가 품에 안은 보따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무언가 싶어 보따리의 매듭을 풀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매듭 사이로, 까맣게 죽은 쇳조각이 보였다.

 

늘 멍하니 풀려있던 눈동자에 천천히 초점이 잡혔다. 마당은 긴장으로 고요했다. 누구도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호타루?”

 

 

그녀의 뒷말은 묻지 않아도 알았다. 호타루는 억지로 입을 열어 답했다.

 

 

“미안, 해요. 야만바기리를….”

 

“야만바기리? 야만바, 아. 우리 포대기. 응, 포대기가 왜.”

 

“야만바기리가, 부서졌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눈동자가, 까맣게 죽어내렸다.

 

 

 

07.

 

손끝 하나 떨지 않고 야만바기리의 잔해를 쥔 그녀가, 그것을 삼키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츠타다가 마침 그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과연 어찌 되었을지.

 

그가 그녀의 턱을 강하게 틀어쥐고 등을 두들겼다. 부디 그것을 삼키지 않았길 바란 마음이 통했는지, 그녀는 피가 범벅된 쇳조각을 토해냈다. 붉게 물든 타액이 입가로 뚝뚝 흘러내렸다.

 

 

“포대기, 포대기야…, 내 포대기….”

 

 

그녀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늘 귀찮음만이 담긴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입가로 피에 가까운 타액이 흘러내렸다. 한을 품은 귀신같은 모양새임에도 그녀를 피하는 검은 아무도 없었다.

 

 

“내 포대기가, 왜…. 왜애….”

 

“주인….”

 

 

미츠타다의 손아귀에서 발버둥 치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볼품없는 머리장식이 떨어졌다. 그녀는 홀린 듯이 나무로 만든 그것을 손에 쥐고, 흙투성이가 되는 것도 아랑곳 않은 채 울음을 터트렸다.

 

 

더는 돌아오지 못할, 깨어진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