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 1
+) 소지한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음.
+) 학은 있고 달은 없음.. 달은 좀 나와주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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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츠루마루
그것은 도실을 점검하던 중 벌어진 실수였다.
도검남사들이 원정에서 가져온 자원을 정리하던 중, 도리어 팔꿈치로 쳐버리는 바람에 쏟아버렸다. 헉 하는 사이 우르르 쏟아진 자원은 불 속에서 영롱하게 타올랐다. 재료를 한 번 잡아먹은 불꽃은 저가 만족하기 전까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한순간의 실수로 낭비해버린 자원을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불꽃이 사그라졌다. 그것을 발견한 것은 식사 재료를 든 바구니를 안고 부엌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는 모르나, 제법 시간이 지났음은 분명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일거리가 늘어남에 대한 불만을 얼굴에 띠우며, 도실로 들어갔다. 홧홧한 열기가 얼굴을 뜨겁게 달구었다.
“아, 귀찮아.”
부지깽이를 들고 잿더미를 헤쳐 기다란 것을 꺼내들었다. 짧은 도신은 아니었다.
“단도는 아니네.”
그녀는 벌겋게 달아오른 검의 손잡이를 덥석 잡았다. 손바닥이 따끔따끔하게 익어감을 느꼈지만, 아랑곳 않고 허리춤에 매어둔 호마레를 그것에 가져다 대었다. 감흥없는 그 행동에도 검에서는 밝은 빛이 터졌다. 그녀는 강한 빛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그는 학처럼 우아하게 소매를 펄럭이며 현신하였다. 모든 것이 흰 와중에, 보석처럼 깨끗하게 영근 호박색깔 눈동자만이 영롱하게 빛났다. 우아하게 눈을 깜박이며 빙긋이 웃음지은 그는, 보기보다 우아하지만은 않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어허, 놀랐느냐?”
초점 흐리던 눈동자가 말갛게 개이며 또렷해지는 것을 본 그, 츠루마루야말로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흔하지 않은 미美로구나.
“오호라, 이야말로 놀랄 노자로세.”
“...이름은?”
“나 말이냐? 내 이름은 츠루마루 쿠니나가. 그대는?”
“히.”
“짧아서 좋구나.”
“그래, 츠루… 씨. 초면에 한 마디 좀 할게.”
“음?”
“당신 상당히 시끄럽거든. 난 시끄럽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흰 옷 입고 있으면서 풀물 들여오면 내쫓을 거야.”
“아하하, 이거야 무서운 주인이로세. 명심하마. 하지만, 흰 옷이기 때문에 전장에서 붉게 물들어야 두루미처럼 보이지 않겠누?”
“두루미든 도르미든, 난 경고했다.”
츠루마루는 흐린 기억 속에서도 늘 사람들이 떠받들던 자신을 기억했다. 때문에 그녀가 태연히 내뱉는 말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 또한 결국 자신을 중히 여기며 지내게 될 것이다. 으름장이야 한 때뿐이리.
그러나 그녀의 말은 모조리 진심이었고, 실제 지나친 장난으로 혼마루 대문 밖으로 쫓겨나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있어야 했음은 그리 멀지 않은 날의 일이었다.
02.미카즈키
모두가 잠든 밤이었다. 푸른 달이 뜬다고 했음에도 피곤하다는 말로 모두를 물러냈다. 그렇게 분명 잠들었음에도, 새벽에 불현듯 눈이 뜨였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녀는 침실에서 빠져나왔다.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이 다가오는 시점, 해가 진 밤은 이전처럼 숨이 막히지 않았다.
드물게 머리를 풀어헤친 그녀가 천천히 혼마루를 거닐었다. 둥근 달이 혼마루를 덮치기라도 할 모양새였다. 연못을 가득 채운 푸른빛은 강렬하여, 마치 사요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이상한 밤이다. 괜한 술렁임에 기분이 나빴다. 잠결에 혼마루까지 오긴 했으나 침실로 돌아가지 않으면 불침번인 도검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을 테다. 귀찮은 게 질색인 그녀로서는 사양하고픈 일이었다.
“어우, 돌아가야지.”
중간에 깨버렸으니 내일도 늦잠자야겠어. 그녀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침실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 때,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벌레를 굉장히 귀찮아하는 그녀로서는 벌레를 찾아내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고, 때문에 작은 기척에 예민한 편이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일 경우, 척살까지 풀코스로 안내해드리리. 그녀는 침실로 돌아가려던 걸음을 돌리며 비장하게 다짐했다.
기척은 도실에서 있었다. 그녀는 용감하게—혹은 무식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기척은 식어빠진 아궁이에서 났다. 문득 그녀는 낮에 불을 지폈던 아궁이를 까맣게 잊었음을 상기했다. 익숙하게 아궁이 속 잿더미를 헤치고, 익숙하게 길죽한 검신을 꺼냈다.
“어…?”
검에 대해 무지한 그녀였지만, 그것을 쥐는 순간 등골이 이유 모르게 서늘했다. 작은 창문으로 비쳐든 푸른 달빛에 검이 웅웅 우는 기분마저 들었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녀는 그대로 검을 제 침실까지 가져왔다. 호마레가 그곳에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정말 무언가에 넋을 빼앗긴 것처럼 그녀는 침실에 와서야 검까지 가져왔음을 깨달았다.
“아, 정말 잠이 덜 깼나.”
혼잣말로 투덜거린 그녀가 호마레를 검에 가져다 대었다. 빛과 함께 꽃잎이 몰아치는 기분이 들었다. 호마레를 쥔 손을 가늘고 긴 손가락이 마주 얽어왔다. 그녀가 눈을 깜박여, 제 손을 얽은 상대를 응시했다.
“나는 미카즈키 무네치카.”
그녀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 목소리는 분명, 그녀가 사니와가 되기 전부터 그녀를 그렇게도 부르던 목소리였다.
“그립고 그리워, 이리도 만나고 싶었단다.”
초승달을 품은 눈동자가 달처럼 이지러졌다. 그, 미카즈키 무네치카는 호마레를 쥔 손을 소중히 감싸 쥐었다.
“내, 부르는 것밖에 하지 못하였으나 결국 이리 만났구나.”
아아, 좋을지고 좋을지고.
“—아가. 내 너를 만나러 이리 왔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골치를 썩일, 또 다른 노친네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