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난무/미카른

[이시미카] 츠키히카리 외전

달月 2016. 12. 15. 01:25

 

 

+)2016.12.15

  

+) 본 내용은 16년 12월 11일에 개최했던 도검온 2회인 "도(刀)를 아십니까"에 나왔던 만바미카-츠키히카리의 외전입니다. 본 내용은 책을 읽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하며, 마감을 못 맞추어 책에 수록되지 못한 내용입니다.

 

+) 예민할 수 있는 내용(도해, 야미오치, 훼손 묘사, 하극상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키워드 : 이시미카, 외전, 야미오치, 혼마루 궤멸, 누구든 작은 미카즈키를 건드리면 주옥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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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자위가 검게 물들었다. 맑은 밤하늘에 뜬 조각달 같던 눈은 새카맣게 물들어, 아름다움은 간 곳 없었다. 새까맣게 죽어버린 눈. 덩그라니 빛 바란 조각달만이 그 안에 들었다. 이시키리마루는 절망했다. 휘날리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너풀댔다. 미카즈키의 녹아내린 얼굴 반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시키리마루는 그저 애달팠다.

 

 

“미카즈키. 미카즈키!”

 

 

허리춤에 매달린 검이 절그렁댔다. 그러나 뽑을 수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제가 저이를. 저 아이를.

 

미카즈키의 목이 삐딱하게 기울었다. 붉은 입매가 비죽 올라가 하얀 이가 드러났다. 기괴한 웃음 위로 검은 안개가 스물스물 뭉쳐든다. 진득한 반죽처럼 눈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자욱은 그의 눈물처럼도 보여서, 이시키리마루는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이시키리마루!”

 

 

제일 먼저 달려온 이는 이마노츠루기였다. 수행을 위해 떠나려던 그는 미카즈키의 상태를 알고 수행을 미룬 채였다. 검은 안개에 휩싸여 기괴하게 웃음 짓는 미카즈키를 본 이마노츠루기가 입을 틀어막았다.

 

 

“흐, 흐흐, 흐, 흐흐흐.”

 

“미…카즈키. 어째서. 미카즈키.”

 

 

뒤로 물러날 수조차 없다. 그것마저, 저렇게 변한 미카즈키에게 상처가 될까봐, 차마 그리할 수 없었다. 이시키리마루는 미카즈키에게 다가가려 손을 뻗었다.

 

 

“안됩니다!”

 

 

앙칼진 노호성이 울렸다. 이시키리마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뒤를 돌아보니 사니와와 남사들이었다. 사니와는 뛰어온 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시키리마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온화한 신검으로 평하던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납고 악귀 같은 얼굴이었다.

 

 

“지금, 내게!!”

 

 

이시키리마루가 노성을 내질렀다.

 

 

“나에게 미카즈키를 뺏으려 드는 건가!!”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의 기세가 평소와 남달랐다. 사니와는 불안감 가득한 가슴을 눌렀다. 남사들 또한 당황하는 눈치였다. 평소의 이시키리마루와는 달랐다. 확실히. 이마노츠루기조차 형제의 기세에 놀라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나에게, 저 아이마저. 저 아이마저! 대체, 얼마나, 얼마나 더 나에게!!”

 

 

고통스럽게 쥐어짜는 목소리가 번졌다. 사니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끄트머리마저 그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루어 줄 수 없었다. 제 힘으로는 불가한 영역이었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이시키리마루에게 시선이 집중된 그 때였다. 이마노츠루기가 고개를 돌린 것은 습관적인 탐색이었고, 미카즈키는 검을 내려치는 중이었다. 무방비한, 이시키리마루의 등을.

 

 

“이시키리마루!”

 

 

이마노츠루기가 검을 꺼내어 막았다. 아니, 막으려 했으나 겨우 흘려내는 게 전부였다. 이시키리마루가 이마노츠루기의 몸에 밀려났다. 튕겨나간 미카즈키가 고개를 반대로 갸웃, 기울였다. 동자 없이 검은 눈매 안에 빛 바란 초승달이 구물구물 움직였다. 지독히 징그럽다. 이마노츠루기는 토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던 검. 아름답고 선한 형제. 그 끝이 이럴 줄이야. 이렇게 될 줄이야. 이마노츠루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청량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데. 지금도, 이렇게. 이마노츠루기가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미카즈키가 다시 검을 내리쳤다. 검게 물든 날을 보며, 이마노츠루기의 머리가 새하얗게 비었다. 당한다!

 

카앙! 쇠붙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본능적으로 움츠렸던 이마노츠루기가 실눈을 떴다. 이시키리마루였다. 이마노츠루기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이시키리마루!”

 

 

검을 뽑지 않았던, 검을 뽑을 생각이 없었던 그가 검을 뽑은 채였다. 이시키리마루가 검을 길게 밀듯이 쳐내었다. 천하오검이며 강하기로는 손에 꼽히는 미카즈키 무네치카라고는 하나, 순수한 힘겨루기는 대태도인 이시키리마루를 이기기 힘들었다.

 

이시키리마루는 미카즈키와 대치한 채 이를 사려 물었다. 미카즈키. 미카즈키. 차마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썩어 바스러진 낙엽처럼 그의 가슴에 쌓였다.

 

 

“이시키리마루….”

 

 

이마노츠루기가 이시키리마루의 등을 응시했다. 그리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이마노츠루기!”

 

 

이번에는 사니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상대는 미카즈키 무네치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검을 집어넣다니! 이마노츠루기는 이시키리마루에게서 가벼운 몸놀림으로 두어 번, 뒤로 뛰듯이 물러났다. 사니와는 어질한 정신을 부여잡았다. 대체 어쩌려고!

 

 

“주인님. 상관하지 말아주세요.”

 

“하?”

 

 

이마노츠루기는 시선을 곧게 앞을 보았다. 뒤는 일절 보지 않은 채였다.

 

 

“이시키리마루가 선택하게 해주세요.”

 

“이마노츠루기! 이게 무슨!”

 

“주인님!!”

 

 

이마노츠루기가 강하게 내질렀다. 평소에 유하다고 하나 산죠의 검은 하나같이 연배가 녹록치 않은 검들이다. 사니와는 오싹하게 내달리는 감각에 비틀거렸다.

 

 

미카즈키를 구하라고도, 구해달라고도 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

 

 

이마노츠루기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그저, 이시키리마루가, 조금이라도 납득할 수 있게. 그저 그렇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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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합을 겨루었다. 미카즈키는 녹록치 않은 상대였다. 하물며 최대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시키리마루는 손안에 미끄러지려는 칼을 재차 쥐었다. 기억 속의 미카즈키은 여전히 어리고, 해맑고, 어여뻤다. 그저, 그저 어여쁜 막내이자 뿌듯한 연인이었다.

 

 

“미카즈키.”

 

 

어떻게 사죄를 해야만, 네 일그러진 울음에, 마음에. 이시키리마루의 마음에 망설임이 서렸다. 가만히 서 있던 미카즈키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녹아내린 반쪽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뒤에서 지켜보던 사니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뒤늦게 도착한 이와토오시가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 시키리…마―루….”

 

 

아이가 첫 말을 떼듯, 더듬더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시키리마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할 수 없다. 할 수 없어. 이시키리마루의 손에서 검이 땡그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어떻게 보아도 곱고 선한 제 연인이고 형제이다. 무엇에 잠식되었다 한들, 제 사람이었다.

 

 

“이시키리, 마루.”

 

 

미카즈키가 한 발 내딛었다. 히죽이죽 웃으며 이름을 되뇌더니 뭉개진 얼굴을 내보였다.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감으면 검은자위의 달이 깜박깜박 점멸했다.

 

 

“이시키리마루.”

 

 

거리는 가까웠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붉은 입술 위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시키리마루는 말라비틀어진 푸성귀마냥 눈매를 일그러트린 채, 그를 보며 마주 웃었다.

 

 

“미카즈키. 미카즈키.”

 

 

아아, 역시 나로서는 널, 해할 수 없구나.

 

 

“이시키리마루―.”

 

 

검붉은 웃음과 함께 섬광이 내달렸다. 이시키리마루는 순응하듯 눈을 감았다.

 

너를 구할 수 없다면 차라리, 네 검에 나를.

 

 

“이시키리마루!!!!”

 

 

사니와의 비명이 울렸다. 미카즈키의 검은 손속도, 자비도 없었다. 연둣빛 소매와 함께 팔이 통째로 날아갔다. 피가 허공을 장식했다. 이마노츠루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끝을 봐주어야만 했다.

 

그 때, 이시키리마루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팔을 뻗었다. 미카즈키의 허리를 감싸 안고, 하복부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카즈키. 네가 어둠에 가려진들.”

 

 

이시키리마루는 한 쪽 팔이 날아갔음에도 평안한 얼굴로 속삭였다.

 

 

“그러한들, 너는 내 유일한 달이란다.”

 

 

애정 어린, 부드럽고 따뜻한 웃음이 미카즈키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데려가다오.”

 

 

고개를 갸웃거리던 미카즈키가 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헤죽 웃었다. 시린 통각이 복부를 꿰뚫는다.

 

이시키리마루의 기억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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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키리마루는 눈을 떴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싸늘한 공기다. 이시키리마루는 눈을 깜박였다. 뻑뻑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왜? 왜 눈을 떴지? 이시키리마루는 혼란스러웠다. 몸을 일으켰다.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이시키리마루는 눈을 크게 떴다.

 

 

“왜…, 어째서.”

 

 

있을 리가 없는 것이 있다. 미카즈키가 베어 던진 팔은 멀쩡히 기동하고 있었다. 살이 베이고 뼈가 갈려 부러지는 감각이 아직도 선연하다. 이시키리마루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움키고, 펼친다. 너무도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시키리마루는 생각을 하려 했다. 지금 왜 여기에, 자신이,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니, 생각할 것도 없었다. 자연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식하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알 수 있는 사실을.

 

 

“……미카즈키.”

 

 

넋이 나가 멍한 얼굴로 읊조린 단어. 그 단어에 찬물을 끼얹은 듯 몸이 식었다. 미카즈키는 어떻게 되었지? 그 아이는. 이시키리마루는 허부적거리며 자리를 박찼다. 발을 어떻게 디뎠는지도 모르고, 반쯤 기다시피 마루로 나갔다. 마루에 나서자마자 이와토오시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시키리마루는 다급히 쓰러지듯 그의 옷을 부여잡았다. 미카즈키가 베어버렸던 손으로.

 

 

“이, 이와토오시. 미카즈키, 미카즈키는. 그 아이는. 그 아이는!!”

 

 

평소 침착하며 온후한 이시키리마루라고는 생각지 못할 모습이었다. 이와토오시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한 번 열린 입은 소리 없이 닫혔다. 이시키리마루의 얼굴은 산 채로 불탄 고통을 겪은 듯 일그러져 있었다. 눈앞에서 본 사실을 이야기해준들, 그러지 않은들. 이이의 고통이 과연 줄어들까.

 

 

“이시키리마루.”

 

“이와토오시!”

 

 

이시키리마루의 절규가 이와토오시를 붙들었다. 평정이 흐트러진 신검에게, 이와토오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미카즈키는 부러졌다. 이시키리마루가 정신을 잃던 그 때, 이시키리마루 채 자신을 꿰뚫었다. 그리고 사니와가 둘을 연결한 도신을 주술로 부러트렸다. 이마노츠루기의 일그러진 얼굴. 이와토오시는 그 얼굴을 기억했다. 배신감으로 얼룩진 형제보다 빠르게 헤시키리 하세베가 이시키리마루를 잡아 던졌다. 검고 진득한 것이 눈물처럼 미카즈키의 얼굴을 뒤덮었다. 뚝뚝 흐르던 그것에 토악질을 하는 남사도 있었다. 그러나 이마노츠루기도 이와토오시도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화상에 일그러진 얼굴로, 정신을 잃은 이시키리마루를 향해 손을 뻗는 그 모습은, 미카즈키는.

 

이와토오시는 그 때를 떠올리며 숨을 멈추었다. 수많은 검을 부러트린 그조차 먹먹한 감정밖에 들지 않았다. 이와토오시는 이시키리마루를 보았다. 더 일그러질 수 없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더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얼굴로, 이시키리마루는 좌절했다. 절망 스민 울음을 토해냈다.

 

 

“아아, 아, 아악!! 미카즈키, 미, 카즈키. 미—카즈키—!”

 

 

미카즈키는 제 몸에 부러진 도신을 반만 남긴 채 스러졌다. 이시키리마루는 그대로 수리실에 실려 들어갔다. 꼬박 일주일을 들여 겨우 깨어났다. 사니와는 모를 것이다. 사니와가 건드린 것은, 깨트린 것은 단순한 ‘연’이 아니었다.

 

 

“이시키리마루.”

 

 

살아버린 가여운 형제. 떠나보낸 가여운 형제. 어느 쪽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애달픈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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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련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시키리마루는 느릿느릿 동료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가, 세어볼 의미도 없었다. 반쯤 넋은 놓은 채 걷는 그의 소매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이 감각은 익숙했다. 이시키리마루는 이 감각을 잘 알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혹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틀자 보인 것은 보고 싶었던 머리꼭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시키리마루는 익숙하게 실망을 감추었다.

 

 

“응? 야만바기리…, 아니. 다른 혼마루의 야만바기리인가.”

 

“이시키리마루.”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가?”

 

 

꽤 다급해 보였다. 무슨 일이길래 날 이리 찾는지.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그의 목을 틀어막는 것이었다.

 

 

“요즘 미카즈키 무네치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이유를 알고 있나?”

 

 

미카즈키. 미카즈키 무네치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만났다. 이시키리마루는 목이 메었다. 그 아이도 그랬다. 저보다 앞서가는 제가 보이면 살금살금 걸어와 슬며시 소매를 당기곤 했다. 소매에서 주섬주섬 간식을 꺼내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 작은 일들이 사랑스럽고 애틋한 존재였다.

 

이시키리마루는 침묵했다. 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무엇이 궁금한지 진의가 궁금했다. 그와 별개로 고통은 가슴을 찔러 고통스럽다. 무어라 답해야 했으나 답할 수 없었다. 이시키리마루는 몇 번이고 입을 벌렸다 닫기를 반복했다. 그가 천을 두른 덕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시키리마루는 제 표정을 다스리기 너무도 힘들었다.

 

 

“…이시키리마루?”

 

 

야만바기리가 고개를 든다. 물렁한 청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했다. 야만바기리는 놀란 듯 눈을 껌벅였다. 이시키리마루는 야만바기리의 얼굴을 보고 제 얼굴을 가렸다. 아마 흉할 것이다.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흉할 것이다. 병마를 퇴치하는 신검? 제 병마조차 쫓지 못하는 신검이 누굴 지킨다는 말인가.

 

이시키리마루는 길게 심호흡 했다.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스스로 끝을 선택할 수 없다. 그 아이를 두고 살아버린 자신은 그럴 자격조차 없다. 전투에 하루라도 빨리 나가 스스로 부러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술렁이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눈가를 가린 손을 내릴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카즈키가 그 곳에 남아있는지 물었다. 이시키리마루의 미카즈키는 이렇다 할 지령이 내려오기 전에 침식되어 폭주했고, 부러졌으니까.

 

 

“뭐….”

 

 

야만바기리의 반응은 이시키리마루의 답변을 듣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저 보이지 않는 것에 궁금증을 느꼈던 모양이다. 아니면 아직 미카즈키의 이변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리라. 다른 혼마루는, 다른 미카즈키는 얼마나 남아있을까. 괴로움에 결국 부서져버린, 조각달은.

 

 

“어이, 이시키리마루!”

 

 

연련이 시작될 모양이다. 멀리 가던 동료의 목소리가 제법 짜랑하다. 이시키리마루는 그 목소리에서조차 미카즈키와 닮은 부분을 찾고 있었다. 비틀어지는 입매는 과연 웃고 있을까. 이시키리마루는 눈가를 가렸던 손을 내렸다. 천천히 표정을 굳혔다. 아직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네에게 말해줄 것은 없구나. 다른 혼마루와도 관련된 일은 허투루 말해주기 힘드니 말이야.”

 

 

야만바기리의 얼굴이 굳었다. 제가 제법 흉흉했던지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이시키리마루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여전히 떠오르는 미카즈키 무네치카는 그저, 빛날 뿐이었다.

 

나는 이미 부서진 이를 그리워할 뿐이지만, 혹, 그대에겐 아직 남아있다면.

 

 

“이시키리마루! 연련 곧 시작한대도!”

 

 

이시키리마루는 멍한 야만바기리에게 읊조리듯 말했다.

 

 

“잘, 부탁하네.”

 

 

미카즈키가 아직 있다면. 이시키리마루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바람결에 흩어지라는 듯, 발걸음을 내딛으며 속삭였다.

 

 

“나는, 지키지 못했으니까.”

 

 

회랑 끝에 선 동료를 보며, 이시키리마루는 허리를 곧게 폈다.

 

곧, 끝낼 것이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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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니와는 여느 때처럼 정부의 소식지를 받아들었다. 어느 혼마루는 증축을 했니, 전력에 도움이 될 도검을 추천받니 하는 내용들을 성의 없이 읽어내린다. 그러던 중, 세 번째 페이지에서 시선이 멈춘다. 첫 번째 문단이었다. 각 혼마루의 사건이나 사고, 혹은 인명 피해 등을 다루는 페이지였다.

 

 

“아….”

 

 

사니와의 심드렁한 표정이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어느 혼마루가 궤멸했다. 적의 급습이 아닌 내부가 원인이었다. 사니와가 살해당했다. 수하의 남사에게. 미카즈키 무네치카는 아니었다. 범인은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으나, 사니와 살해 후 자원과 수리실을 불태웠다 한다.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만들고 망가뜨린 혼마루의 결말은 뻔했다. 이 모든 일은 사흘 만에 끝났다고 한다.

 

 

“주인님, 눈 여겨 보실 소식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 눈 여겨 본다기 보다….”

 

 

히라노는 목을 쭉 뺐다. 사니와가 짚은 곳을 읽더니 약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남사들에게 있어 본체가 부러지고 불타올랐다는 건 인간에게 훼손 살인과 비슷한 충격임이 분명했다.

 

 

“어쩌다 그랬을까. 미카즈키가 있던 혼마루가 아니라던데.”

 

“미카즈키 님이 있던 혼마루가 아닙니까?”

 

“미카즈키는 우리 쪽이 마지막이니까. 아마 그 전에 이미 징조가 나타났던 혼마루던가, 아니면 미카즈키를 처음부터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지.”

 

“어느 쪽이던 서글프군요. 적이 아닌 아군의 손에 의해 무너지는 혼마루라니.”

 

“그렇네. 역시 마음을 가진 이상 예측대로 흘러가진 않는 모양이야.”

 

 

사니와는 서글프게 웃으며 마에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