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니]전력 : 이름
+) 2017.05.07
+) 오늘은 어쩐일로 많이 안 늦었네요!!<노양심
+) 히게사니 요소가 많이 들어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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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검사니 전력 : 이름
“음, 모르겠는걸.”
우구이스마루가 느긋하게 차를 머금었다.
“그러고 보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미카즈키는 미소 지으며 다과를 입에 물었다.
“흐응.”
히게키리는 눈꼬리를 늘어트렸다. 본인도 뜬금없이 떠오른 것이긴 하였으나, 평소 행동에 비해 그들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대들이 모른다면 누가 알까?”
히게키리는 찻잔을 의미 없이 빙글빙글 돌렸다. 미카즈키나 우구이스마루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
“우리보다 일찍 온 아이들도 있으니 누군가는 알지 않겠누?”
“아랴, 생각보다 적극적이지 않은데.”
히게키리는 웃음을 흘렸다. 그의 어투에서 미묘함을 느낀 미카즈키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가느다란 틈 사이로 우치노케가 제법 날카로운 빛을 벼렸다. 히게키리는 모르쇠 얼굴로 빙긋 웃어보였다. 기묘한 기싸움 사이로 우구이스마루가 끼어들었다.
“적극적이지 않게 보였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우구이스마루.”
미카즈키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혔다. 우구이스마루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여전히 느긋하고 태평한 모양새였다. 얼핏 따뜻해 뵈는 미소가 우구이스마루의 입매로 스몄다.
“새치기를 한다면, 눈에 띄도록 보여줄 수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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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미다레는 문을 열어 젖혔다. 벌써 열다섯 번째였다. 기척이 있는 방은 한 번씩 다 열었음에도 찾지 못하다니. 횟수로는 열다섯 번째지만 가장 처음 열었던 방문이기도 했다. 늘어난 트레이닝복을 입고 드러누운 인영이 하나. 미다레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이인―.”
“아, 들켰네.”
만사가 귀찮은지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미다레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곁에 쪼그려 앉았다. 대충 묶은 머리, 위아래 색이 다른 트레이닝복. 미다레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그녀의 팔을 콕콕 찔렀다.
“있지, 주인. 오늘은 또 왜 이렇게 늘어졌어?”
“또가 아니고 늘 그랬어.”
“그러니까 왜애?”
재밌어 보이지도 않는 걸. 미다레가 입을 삐죽였다. 똑바로 누워 있던 인영이 미다레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하얀 피부와 반짝이는 푸른 눈, 꽃잎을 닮은 머리카락. 뭐 하나 안 예쁜 곳 없는 아이였다. 남자이긴 했지만.
인영―사니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내가 굳이 꾸미지 않아도 미인들 천지인데 뭐하러.”
“와, 우리가 예쁘고 멋진 거랑 주인이 예뻐지는 건 상관없잖아.”
“귀찮아.”
“치.”
미다레는 오늘도 사니와를 설득하는 것에 실패했다. 그녀가 드러누운 발치에 서류가 흩어져 있는 걸 보니 그래도 일하는 시늉은 낸 모양이었다. 미다레가 손을 뻗어 종이뭉치를 쓸어 모았다. 대강 숫자대로 정리하니 맨 앞장, 정부의 직인과 함께 이유 없이 번진 자국이 보였다.
“어라? 주인―, 여기 서류 번졌는데 괜찮아?”
“오늘은 차도 안 마셨는데?”
그녀가 머리를 긁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미다레가 웬일인가 싶은 눈으로 보니 서류를 두 번 작성하느니 일찍 고치는 게 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다레는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웃었다.
“어디가 번졌어?”
“여―기.”
미다레가 종이 한 군데를 짚었다. 그녀는 서류를 받아 앞뒤로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번진 거 아냐.”
“안 보여? 그치만 여기 분명히.”
“그거, 아마 내 이름일 걸.”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곤 다시 자리에 누웠다. 미다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주인 이름, …뭐?”
미다레는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와 동시에 콘노스케가 방 안으로 튀어 들어왔다. 미다레가 놀랄 새도 없이 손에서 서류뭉치를 낚아챈 여우가 캥캥 짖어댔다.
“사니와님!!! 대체 서류를 어찌 관리하시는 겁니까!!”
“어차피 안 보이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아, 어차피 모르잖아. 안 보이잖아.”
“사니와님!!”
여우가 억울한 듯 재차 캥캥 짖었다. 미다레도 진중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주인, 저 여우 말이 맞아. 조심해.”
“미다레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사니와님께서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우가 억울한 어조로 짖었다. 그녀는 콘노스케를 한 번 쳐다보더니 미다레를 응시했다. 의문이 주렁주렁 달린 얼굴을 보며 미다레는 고개를 저었다.
“기본적으로 인외의 것은 욕심쟁이야. 모두가 아직은 지금에 만족한다고 쳐도 어느 순간. 누구라도 조금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는 이가 나올지 몰라. 그렇게 되면 ‘이름’이라는 건 굉장히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버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미다레는 평소와 달리 심각한 어조로 조곤조곤 속삭였다. 푸른 눈동자가 깊은 색을 띄어 빛마저 잡아먹은 심해처럼 보였다. 그녀는 미다레가 잡은 손을 꿈질거렸다. 아무래도 그녀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았다.
“주인, ‘이름’은 우리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를 지녀. 이름은 본질과 연결 되고, 본질은 상대를 완벽하게 종속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되거든. 그래서 흔히 말하잖아. 영문 모를 목소리가 부르는 말에 세 번 답하게 된다면 끌려간다는 거. 경계가 섞여버리는 거야. 인간과 인외가.”
미다레는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입을 어물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미다레를 멀뚱히 볼 뿐이었다.
“하지만 저건 내 본명이 아닌데.”
항변하듯 그녀가 중얼거렸다. 콘노스케가 이마를 짚었다. 미다레도 이번만큼은 콘노스케를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 ‘이름’이라는 건.”
미다레는 말을 잇다 말고 몸을 굳혔다. 누군가 오고 있다. 미다레는 서류 봉투를 콘노스케에게 던졌고, 콘노스케는 서류를 문 채 허공에 맴을 돌더니 사라졌다. 툇마루가 삐걱이는 소리가 작게 울리더니 볕을 등진 밀색 머리카락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랴, 여기에 있었니?”
“히게키리.”
그녀는 고개를 늘여 미다레 뒤에 선 히게키리를 보았다. 미다레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녀의 손을 가볍게 토닥였다.
“주인, 난 먼저 가볼게. 그리고 아까 내가 말한 거, 잊으면 안 돼?”
평소와 같은 발랄한 목소리가 창백한 안색 위로 덧그려졌다. 그녀는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다레가 방을 빠져 나가고, 히게키리가 그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니?”
“이름을 함부로 하지 말라던가, 뭐라던가.”
그녀는 귀찮다는 듯 꾸물꾸물 히게키리의 무릎에 머리를 뉘었다. 히게키리는 그녀가 눕기 편하도록 자세를 바꾸며 눈매를 휘었다.
“아랴, 이름?”
“조심하라고 하는데, 뭐가 뭔지 알아야 말이지. 어차피 다들 주인, 주군, 이렁게 부르면서 새삼 이름은 왜 조심하라는지.”
그녀는 졸린 듯 눈을 감은 채 투덜거렸다. 히게키리는 그녀의 머리에서 매듭 풀린 머리끈을 잡아 빼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히게키리가 속삭였다.
“인간은 이름을 중요시 여긴다고는 들었지. 주인은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게 속상한 거니?”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네 이름을 불러줄까?”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한층 은밀해졌다.
“가르쳐주겠니?”
히게키리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녀는 모를 흉흉한 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