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니]전력 : 꽃
+) 2017.05.14
+) 오늘이 로즈데이인 걸 쓸 때 몰랐다가 중간에 알게 된 힠... 그래서 내용이 좀 우중충 합니다
+) 야겐사니/히게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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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4
전력:꽃
볕이 죽어 정원은 우중충했다. 겨울 볕과는 달랐다. 야겐 토시로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아랴, 그러니까, 아와타구치였던가.”
“겐지 형씨.”
발소리도 없이 다가온 것은 겐지의 보물, 히게키리였다. 검은 셔츠에 하얀 양장을 입고 걸어오는 몸짓은 한없이 우아했다. 나른해 보이는 눈매가 접혀 웃음을 내보였다. 무해함을 어필하는 몸짓인 듯 했으나 번지수가 틀렸다.
“형씨.”
“으응?”
“입이 안 웃잖아.”
그래서야, 둔해터진 대장도 알아챌 수밖에 없을 거라고. 야겐이 뒷말을 중얼거리니 히게키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입가를 가리며 제법 유쾌한 웃음소리를 쏟아냈다. 야겐은 히게키리가 옆에 나란히 서자마자 시선을 돌렸다.
“으음, 웃는 얼굴은 여전히 어렵구나.”
“웃기는 했었어?
“그이는 잘 웃는다고 해줬으니까 웃은 게 아닐까?”
히게키리는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려서. 야겐은 그 모습을 보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각양각색의 꽃이 두서없이 가득한 위로, 야겐은 쥐고 있던 겹겹이 피어난 작약을 만지작거렸다.
“그대는 작약을 가져왔구나.”
“어울리지?”
야겐이 악동처럼 씩 웃었다. 히게키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가볍게 동조했다. 응, 생각해보니 그럴지도. 야겐은 히게키리가 들고 있는 꽃을 보았다. 줄기 없이 커다란 꽃송이는 활짝 피었으나 어딘가 생기가 없어보였다. 고귀한 보랏빛을 두른 꽃은 흔하지 않다. 야겐이 의아한 얼굴로 히게키리를 한 번 보았다. 히게키리가 눈매를 접어 웃었다.
“그대 먼저 하려무나.”
야겐은 고심 끝에 작약을 꽂았다. 환히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답길 바라며, 귓가에 조심히 밀어 넣은 작악은 여러 꽃 사이에서도 돋보였다.
“그대는 여심에 능하겠어.”
히게키리가 놀리듯 속삭였다. 야겐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가 마지막으로 끝내려고 했으나, 이렇게 되면 히게키리가 마지막이었다. 히게키리는 망설임 없이 줄기 없는 꽃송이를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자리할, 그 자리에. 그 순간 야겐은 섬짓함을 느꼈다.
“형씨?”
“있지, 아와타구치의 아이야.”
히게키리는 꽃을 놓느라 숙였던 허리를 폈다. 히게키리의 허리 아래로 꽃비가 우르르 쏟아졌다. 야겐이 귓가에 꽂았던 작약과 히게키리가 마지막에 얹은 보라색 꽂만이 흔들림 없었다.
“이만큼 인사를 받았으니, 나는 이제 돌아가마.”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어.”
야겐이 이를 갈았다. 히게키리는 품안의 것을 안은 채 웃었다.
“겐지는 욕심쟁이라,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야 한단다. 나는 겐지의 보검. 욕심이 과하면 과했지 덜한 이는 아니란다.”
“히게키리!”
“이만큼이나 기다렸으니, 나도 보상을 받아야지 않겠니.”
히게키리는 고개를 숙여 가슴에 얹힌 꽃에 입을 맞추었다.
“안녕, 전우야. 부디 잘 지내렴.”
히게키리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안고 나무 틈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흐릿한 하얀 잔상이 맴돌다 안개처럼 흩어졌다. 실책이다. 야겐은 입술을 깨물었다.
히게키리가 사니와의 시체를 훔쳐 달아나버렸다. 야겐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