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난무/검*사니 전력

[검*사니]전력 : 기다림

달月 2017. 6. 4. 23:28


+) 17.06.04


+) 아, 오늘도 당연한 지각이군여(자포자기)


+) 오늘도 사골을 우리는 힠놈..... 


+) 기본이 되는 이야기는 굳이 모르셔도 상관 없지만, 만바사니 쪽 이야기를 보시면 이런 일이려니 하시면 됩니다.


+) 키워드 : 만바사니, 히게사니, 소우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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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4


검사니 전력 : 기다림





몇 번째더라. 너도 참 징하다. 내 성격 빤히 알면서 답장 한 번 없니, 어째.


얼마나 원정을 멀리 갔길래 온다 간다 있다 없다 편지 한 통 없고.


이번에야말로 답장 안 보내면 각오해 두는 게 좋아.


네가 둘러쓴 거적대기들도 모조리 솎아버릴 거야.


카센이 좋아하겠네. 아까워? 아까우면 얼른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그 전에 답장이 한 번이라도 오면 좋겠네.


보고 싶다.


내 포대기.


[ ] 가.




>




“념념념.”



콘노스케는 유부 기름으로 얼룩진 입가를 혀로 싹싹 핥았다. 입 안에 남은 유부의 고소하고 짭짜름한 맛이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멋졌다. 이 혼마루의 주인은 열흘에 한 번, 콘노스케를 불러 편지를 쥐어주곤 했다. 그 때마다 접시에 산더미처럼 유부를 쌓고 기다리니, 콘노스케는 그 노력이 가상하여 사니와의 편지를 옮겨주기로 하였다. 기실, 혼마루마다 담당하는 대롱여우의 수는 무한하니, 사니와의 심부름꾼을 자처한들 콘노스케에 있어 썩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심부름에 따른 호기심은 별개로 쳐야 했다.


그녀는 사니와들 중 게으르기로 정평이 났다. 정부에서조차 기일만 맞추면 그러려니 하라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정도이니. 그런 그녀가 어느 순간 꼬박꼬박 편지를 써서 보내기 시작한 것은 굉장히 ‘별 일’에 속했다. 간혹 궁금하여 사니와에게 묻자니, 원정 나가 돌아오지 않는 괘씸한 남사에게 보내는 것이라 했다. 극 수행을 간 남사입니까? 하고 물어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좌우로 저었을 뿐이었다.



“게으른 것만 빼면 참 좋은 분인데. 념념.”



콘노스케는 앞발로 입 주변을 문질러 닦았다. 기름에 전 털을 정리하고 기지개를 쭈욱 폈다. 몸도 쭉쭉 풀렸겠다, 사니와가 부탁한 편지배달을 할 시간이었다.



“아랴? 정부의 대롱여우로구나.”



콘노스케는 저를 부르는 음성에 뒤를 보았다. 겐지의 보물이자 헤이안 시대의 옛 검, 히게키리가 서 있었다. 그는 소리 없이 사뿐사뿐 걸어 콘노스케의 곁으로 다가왔다.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니?”


“사니와님의 부탁을 받았습지요!”


“아랴? 그이가?”



별 일이네. 히게키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콘노스케도 그 말에 동의하듯 캥캥 울었다. 히게키리의 시선이 콘노스케의 등짐으로 향했다. 목에 단단히 묶인 것으로 보아 한두 번 한 모양새가 아니다. 뺏어볼까? 히게키리는 잠시 고민했다.



“거기서 뭘 하십니까?”



소매를 걷어붙인 소우자 사몬지가 복도 끝에서 걸어 나왔다. 히게키리는 썩 마주친 적 없는 검에게 손을 대충 흔들어 주었고, 콘노스케는 인사 하듯 캥캥 짖었다.



“소우자 님이 아니십니까.”


“콘노스케님, 어쩐 일로 여기에 오신 겁니까? 그리고 히게키리…님은 어쩐 일로 콘노스케와 함께 계십니까?”



호칭을 잠시 고민한 것치고는 매끄러운 말이었다. 히게키리는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콘노스케의 등짐을 쿡 찔러 보였다.



“아랴, 나는 이 여우가 주인의 심부름을 간다기에.”


“심부름이요?”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콘노스케를 보니, 콘노스케는 별 생각 없이 그 과정을 술술 털어놓았다.



“사니와님께 부탁을 받아 멀리 원정 가신 남사님께 편지를 전달하려는 참입니다요. 늘상 같은 분에게 보내시는 모양인데, 이렇게나 오래 자리를 비우시다니. 어지간히 바쁘신 분인 모양입니다. 캐앵.”



콘노스케의 말을 들은 소우자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현재 혼마루의 사용패를 정리하고 온 참이지만, 수행이라곤 오늘 막 출발한 후도 유키미츠 외에는 없었다. 원정이라고 해 봐야 하루면 정리하고 오는 것이 태반인데, 오래도록 혼마루에 귀환하지 않은 검이라고? 소우자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히게키리는 그 의아함을 놓치지 않았다.



“아랴, 그대는 무언가 아는 모양이네.”


“안다고 하기보다…. 혹, 설마.”



소우자는 기분 나쁜 가정을 하나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쯤이었다. 아니, 조금 더 후였던가. 중요한 것은, 그녀가 기다리는 이는 분명.



“콘노스케님, 죄송하지만 주인의 편지를 잠깐 내어줄 수 있겠습니까?”


“캐앵?”



심부름에 차질이 생길 모양이었다. 콘노스케는 산더미 같은 유부를 받아놓고 심부름에 방해가 들어오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소우자는 그런 콘노스케를 달래듯 내용만 확인한 후 무탈하게 편지를 돌려주겠다 거듭 약조했다.


콘노스케는 그런 소우자의 약조에 머뭇머뭇 등짐의 매듭을 풀었다. 꽤 정갈하게 접힌 편지는 단 한 장이었다. 소우자는 눈을 감았다 뜨며, 접힌 편지를 열어 내용을 훑었다. 편지를 다 읽은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반쯤은 체념, 반쯤은 원망. 히게키리가 보기에 상당히 복잡한 얼굴이었다.



“…감사합니다, 콘노스케님. 심부름을 지체하게 만들어 죄송하니, 다음번에 저를 찾아 오시면 유부를 좀 챙겨드리겠습니다.”


“휘하의 남사로써 주인을 걱정하는 마음이 어찌 심부름을 늦추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번에 찾아뵙겠습니다, 소우자 님. 캥!”



콘노스케는 등짐에 편지를 다시 넣어 단단히 매더니 뿅뿅 뛰어가 버렸다. 소우자는 얼굴을 맨손으로 문지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히게키리는 그런 소우자의 행동을 보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편지에 문제가 있니? 잡아 올까?”


“아니, 아닙니다.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아.”



소우자는 말을 멈추었다. 눈 앞의 히게키리는 ‘그 일’ 이후에 온 검이었다.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소우자의 고민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히게키리의 눈매가 가늘게 휘었다. 마치, 비밀을 지키겠다는 듯이.


소우자는 맹수에게 홀려 아가리로 들어가는 것이 그러할까. 고민하면서도 생각보다 침착한 목소리로 ‘그 일’을 풀어내었다.



“실은….”




>




해가 질 즈음이면 낮의 더위가 거짓말처럼 서늘하다. 히게키리는 다다미 바닥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자는 사니와를 보곤 킥킥 웃었다. 가벼운 담요를 찾아 그녀에게 덮어주려니, 그녀의 손에 쥐인 패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히게키리의 입매가 내려가고, 휘었던 눈매가 덤덤해졌다. 소우자 사몬지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못 믿을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가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남사’는 이야기 속, 돌아올 수 없는 그이겠지.


히게키리는 그녀의 곁에 슬쩍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누워서 자느라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히게키리는 비죽 웃었다.

히게키리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욕심냈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선’을 쉬이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저 패를 바수는 것이야 눈을 꿈벅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겠지만, 그 이후 그녀의 반응은 예측할 수 없었다. 덤덤할 수도 있고, 방어기제가 발동할 수도 있다. 사니와의 정신력은 곧 혼마루의 존폐와 달려있다. 게으르고 일 안 하는 주인이지만 혼마루가 위태롭다 느낀 적은 없었다. 적어도, 히게키리가 현현한 이후에는 그랬다.



“네 갈증이 내가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노란 짐승의 눈으로, 히게키리는 그녀의 손에 쥐인 문장을 노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한, 녹슨 문장.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의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