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바기리*여사니와] 얼기설기
+) '깨어지다'의 뒷내용. 2호 포대기....
+) 엉엉 포대기 내 포대기
+) 새벽에 포대기 끌올되서 감성 터져서 썼습니다 엉엉 내 포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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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한참을 오열하던 그녀는 그대로 혼절했다. 당황한 쇼쿠다이키리가 그녀를 안아들었고, 야겐은 구급상자를 꺼내왔다. 피부가 불긋하게 달아올라 열꽃이 홧홧하게 오르고, 체온계가 40도 가까이 올라갔다. 사람이 이렇게 열이 오를 수 있을까. 검들은 처음 보는 그녀의 상태에 허둥거렸다. 그녀의 입술이 바싹 마르다 못해 붉게 터지고, 이내 까맣게 핏자국이 내려앉았다. 인간의 몸이라곤 날붙이에 베이면 피가 나고 죽는다는 사실만 아는 그들이 보아도 그녀의 상태는 썩 좋지 못했다.
야겐은 인간의 병명에 대해 적힌 책을 찾아 줄줄이 읽었다. 그러나 그녀와 증상이 닮은 것이라고는 열이 나는 감기뿐이었고, 그저 사람의 몸은 고열이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정도였다. 도검남사들은 순번을 정하여 차가운 물을 떠오고 깨끗한 천을 가져오고 새 이불을 가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고열에 들떠 앓은 지 사흘 째 되는 날 밤, 그녀가 홀연히 눈을 떴다.
온 몸이 땀으로 끈적인다던가, 열에 시달린 근육이 저려 시리다던가 하는 감각은 뒷전이었다. 그녀는 땀에 젖은 유카타 채로, 피와 진액이 말라붙은 입술을 움직였다. 입안이 화끈거리고, 어쩐지 비린 맛이 맴돌았다. 결국 벌어지지 않는 입술은 포기하고, 삐거덕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가누기 힘든 몸으로 비틀비틀 방을 나선 그녀는 의도하지 않은 걸음을 힘겹게 옮겼다. 땀에 젖은 피부로 여름바람이 훅 스쳐갔다. 더워야 할 그 바람이 제법 시원할 정도였다. 정원이 보이는 마루를 조심스레 걸어, 그녀가 도착한 곳은 도실이었다. 무겁다 싶은 문을 밀어 여니, 기묘하게 식은 공기가 그녀를 감쌌다.
“아….”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도실 한 구석에는 작은 방이 있었고, 그곳에는 현신하지 못한 검들이 잠들어 있다. 그녀는 쪽문을 열고 보관실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검에 손을 뻗어 쥐었다. 더운 여름임에도 보관실의 공기는 미묘하게 차가웠다. 손바닥에 채 가시지 않은 열기가 검의 찬 기운과 섞여 번졌다. 그 검을 품에 안으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내 포대기.”
그녀가 늘 소매에 넣고 다니던 호마레가 밝게 빛났다. 벚꽃이 사뿐사뿐 흩날리고, 천을 펄럭이며 어린 청년이 가뿐하게 그녀 앞으로 내려섰다. 초점 흐린 눈이 현신한 츠쿠모가미를 향했다.
“나는, 야만바기리 쿠니히로.”
그 이름을 듣자마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야만바기리의 얼굴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초점 흐려진 눈으로 눈물만 뚝뚝 흘리며 야만바기리를 보았다. 울음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흉했다.
“흐, 흐으. 포대기야아—….”
야만바기리는 순간 이것이 내 주인인가 고민했으나, 입술에 까맣게 내려앉은 피딱지에 한숨을 내쉬었다. 기억은 흐려도 저것이 아플 것이라는 것은 안다. 결국 그녀는 엉엉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팔을 벌리며 안겨드는 그녀의 행동도 행동이었다. 그는 제 품에서 한참 울다 잠들어버린 그녀의 등을 도닥였다.
“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주인의 행동에, 야만바기리는 심란한 얼굴로 그녀를 품에 고쳐 안았다. 일단은 그녀를 침실에 데려다 놓는 것이 우선일 터. 그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야만바기리가 도실을 나서 혼마루까지 걸어가니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소우자 사몬지가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소우자는 야만바기리를 발견하고, 그의 품에 축 늘어진 주인을 번갈아 보며 작게 신음했다.
“세상에.”
얼마나 괴로웠으면. 소우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를 야만바기리가 부럽기까지 했다. 그녀는, 우리가 부러져도 저렇게 아파하고 울어줄까? 소우자는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야만바기리 쿠니히로, 지요?”
“아아. 넌….”
“저는 소우자 사몬지라고 합니다. 그대가 안고 있는 이는 여기 혼마루의 주인이지요.”
“역시, 그런가.”
야만바기리가 고개를 숙여 옅게 열꽃 핀 얼굴을 보았다. 흉하고, 못생겼다. 소우자는 손을 뻗어 그녀를 받아 안으려 했다.
“저에게 주인을.”
“…내가, 해도 될까?”
“네?”
소우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만바기리가 머뭇거리며 주인을 고쳐 안고 있었다. 소우자는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쪽으로.”
야만바기리는 길안내를 하는 소우자의 뒤를 따르며, 고민 끝에 질문했다.
“소우자, 사몬지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하나 물어보아도 될까.”
“네.”
“주인은…아픈 건가?”
“지금은 조금, 그런 듯합니다.”
본래 건강하신 분인데 최근 며칠 심하게 앓았답니다. 소우자는 조용하게 답해 주었다. 야만바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약한 이가 아니라니 다행이다. 사실 그녀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자신에게 안겨들었단 사실이, 생각해보면 썩 마음에 들었던 차였다. 거짓된 검이라 스스로를 칭하던 그의 입에서 그 단어가 쑥 빠지게 만들 정도로 충격이 크긴 하였다.
“그런데, 포대기…라고 함은.”
작게 중얼거리는 야만바기리의 말에, 소우자는 잠시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당시 내번이었던 그가 떠올리기에도, 그녀는 온몸으로 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아픈 와중에도. 소우자는 탄식을 삼키며 몸을 돌려 우아하게 웃었다.
“주인은 때때로 저희에게 애칭을 붙이곤 합니다. 아마 그것은 당신의 애칭이라는 말이겠군요.”
“아, 그런가.”
야만바기리는 조용히 수긍했다. 소우자는 그가 예전의 야만바기리와는 미묘하게 다른 점을 주시했다. 저것은 주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소우자 사몬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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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다. 그녀가 새벽에 잠깐 정신을 차렸단 소식을 듣고 도검들은 기뻐했다. 아직 열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 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카센은 우아함을 잊고 마루 위를 허둥지둥 달렸다. 쇼쿠타이키리는 부엌에서 나오질 않았다. 미다레를 필두로 단도들은 주인을 위해 꽃을 꺾어오겠다며 원정 아닌 원정을 나섰다. 겨우 사흘 만에 돌아온 활기였다.
그 소란 속에서, 야만바기리만이 미묘한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대접이 도리어 익숙한 쓴 맛임을 알았다. 그는 자처해서 그녀의 방 앞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그녀가 그를 보며 안겨오길 희망했다.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린 시간은 제법 늦은 오후였다. 더위에 답답해진 그녀가 두터운 이불을 발로 걷어차려 했다. 그러나 고열에 시달렸던 몸이 그리 쉽게 움직일 리 없었다. 코 안이 답답하고 입술은 위아래가 딱 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입 안에는 피 맛과 피 냄새가 났다. 그렇게 그녀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막 자리에 앉았을 때, 야겐이 방문했다.
“대장, 야겐 토시로야.”
“어, 응. 들어와.”
“대장!”
야겐은 이제나 깰까 저제나 깰까 하며 한 시간에 한 번씩 찾아왔다. 드디어 침실에서 그리도 그리웠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냉큼 문을 열어젖혔다. 수척해진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 골이야. 불륨 낮춰라.”
“대, 대장….”
싸늘하다 싶은 덤덤한 목소리. 분명 주인이었다. 야겐은 기쁨에 못 이겨 어른스럽지 못하게 혼마루로 달려 나갔다. 그녀는 야겐의 뒷모습을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문 밖에 앉은 천 뭉치를 보았다. 그녀가 한참 그것을 응시하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포대기야.”
그것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는 일순 미묘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야만바기리와 그녀는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녀가 느릿느릿 손짓했다.
“포대기, 이리 와봐.”
야만바기리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녀가 부르는 대로 다가갔다. 얌전히 이불 옆에 정좌하고 앉은 그를 보며, 그녀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그녀가 속으로 의아함을 느끼며 야만바기리를 관찰했다. 무언가 바뀐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야만바기리 또한 새벽에 보았던 모습과 다른 그녀에게 약간 당황한 참이었다. 상당히 갭이 있었다. 그렇게 품에서 울 땐 언제고. 그는 아주 조금, 그녀가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야만바기리에 대해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대기는 포대기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피가 터져 검게 말라붙은 입술을 움직였다.
“포대기야, 나 수박 먹고 싶은데.”
“수박, 말입니까.”
대답도 없이 멀뚱히 요구하는 음식에, 야만바기리는 말없이 일어섰다. 그녀가 가져오랬으니 어딘가 있을 터다. 어쩔 수없이 터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그가 침실을 나섰다. 그녀는 야만바기리의 뒷모습을 보다 문득, 뺨을 만졌다.
“나, 울었나?”
왜 울었지. 고개를 갸웃대던 그녀가 이내 귀찮아하며 땀으로 젖은 이불 위로 널브러졌다.
“아, 배고파.”
어서 왔으면 좋겠다, 내 포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