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니] 전력 : 유언
+) 2017.07.04
+) 이제 전력이 전력이 아니게 되었다(양심선언)
+) 저희집 검사니의 큰 흐름은 포대기사니에서 이어지는 기분적 기분입니다...
+) 만바사니/히게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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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2
검사니 전력:유언
더운 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여름 볕은 강했고, 눈을 뜨기 힘들었다. 정원의 습도가 올라 피부로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은 불쾌함.
그녀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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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그녀는 손등 위로 축축하게 떨어지는 감각에 눈을 떴다. 입가로 침이 넘쳤다. 쓰읍. 그녀는 젖은 손등과 입매를 소매로 문질렀다. 분명 책상에 앉아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중간에 머리가 아파서 잠깐 엎드렸던 게 그대로 숙면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그녀는 부스스한 머리 사이를 손톱으로 긁었다. 어제 씻기 귀찮아서 그냥 잤더니 그새 두피에 뾰루지가 났는지 걸리는 감각이 제법 아팠다. 그녀는 팔을 쭉 뻗어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나, 해가 여전히 중천이다. 참으로 길다, 길어. 고개를 돌려 툇마루 쪽을 보니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녀는 더위를 그리 타는 편이 아니지만 습도와 더위로 인해 두통을 앓았다. 하지만 티 나지 않는 얼굴 탓에 남사들은 대부분 알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마른입을 짭짭 다셨다.
시원한 게 먹고 싶었다. 그러나 그 이상 움직이기 싫었다.
“…….”
볕이 강해서 쨍하다 못해 하얗게 번졌다. 벌써 두 번째, 정확히는 세 번째 맞이하는 여름 정원이었다. 제법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남사들의 수가 늘었고, 정부에서 내려오는 지시에도 조금 익숙해졌다.
그녀의 멍한 시선 끝에 시들시들한 수국더미가 닿았다. 오늘 정원 담당이 누구였더라…. 둔하게 늘어진 감각 아래로 두통이 몰려왔다. 지끈거리는 머리, 훅 몰려드는 열기에 숨이 막혔다. 만사가 귀찮다. 그녀는 반쯤 구르다시피 하여 아예 다다미 위에 큰 대자로 드러누웠다. 다행히 그녀의 머리 쪽으로는 볕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른아른 흐려지는 시야,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주인.
속삭이는 목소리가 익숙하다. 언제쯤 들었더라. 그녀는 주변을 더듬어 잡힌 것을 꼭 쥐었다. 거짓말처럼 두통이 스르르 가라앉으며 호흡이 편해졌다.
―돌아오면, 할 이야기가 있어.
아, 누구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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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따란 언덕 위로 해바라기가 높게 섰다. 해바라기 밭을 등지고 서니 허리께까지 자란 수풀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그녀는 어느새 쓰고 있던 밀짚모자의 챙을 잡아 눌렀다. 저 멀리, 수풀 사이로 하얀 천이 기세 좋게 펄럭였다. 이상하게 숨이 가빴다. 그녀는 하얀 천을 향해 달렸다. 강하게 부는 바람에 모자는 벗겨졌지만 이상하게 덥지는 않았다. 두어 번 구를 뻔 했으나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았다. 구릉을 내달려 겨우 하얀 천이 날리는 곳에 닿았다. 펄럭이는 천이 익숙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갓 세탁한 듯 새하얀 천을 잡아당겼다.
하얗게 두른 천 아래로, 새파란 보석이 있었다. 코끝이 닿으며 그리운 냄새가 났다. 그녀는 눈을 내리 감았다. 길게 눈물이 떨어진다. 맞닿은 손은 서늘하다가도 뜨거웠다.
“돌아오면, 할 말이 있어.”
속삭이는 목소리에 그녀가 눈을 번쩍 떴다. 손을 휘감은 하얀 천이 허공으로 후룩 떠밀려 날아갔다.
맞잡았던 손도, 스치듯 닿은 코끝도, 무엇도 형태가 없었다. 이미 날아가 보이지 않는 하얀 천을 찾았지만 소용없었다. 모자 없이 받아내는 여름 볕이 그저 가혹했다.
“ .”
더는 남지 않을 단어가 눈물과 함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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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히게키리는 고개를 괴었다. 한 손은 여의치 않게 붙들려서 쉬이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을 둥글게 만 채 모로 누운 그녀가 달팽이처럼 보였다. 부스스한 머리가 흩어져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모습이 영 단정치 못했다. 그러나 이상도 하지. 히게키리는 그 모습이 전혀 흉하지 않았다. 도리어 무방비한 것이 귀엽다고나 할까. 히게키리는 놀고 있는 손으로 그녀의 뺨을 꾹 찔렀다. 물풍선마냥 침이 주룩 터졌다. 깔끔하기는커녕 홍수마냥 넘치는 침에도 히게키리는 그저 소리죽여 웃었다. 귀엽기도 하지. 붙잡힌 손이 저려 약하게 움직이니, 도망갈 새라 꽉 쥐는 체온이 나쁘지 않았다.
마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녀를 관찰하던 히게키리의 입매가 스르르 내려갔다. 덕지덕지 얼굴에 엉긴 머리카락 아래로 습기가 퐁퐁 솟았다. 끙끙대는 소리가 났다면 어련히 악몽일까 싶었겠지만, 그것은 소리도 없이 줄줄 떨어졌다. 히게키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 같기는 한데, 들리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일지도.
“오니가 되어 버릴 테니까?”
히게키리는 스스로를 타이르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어느새 눈물이 멈췄는지 태평하게 고른 숨을 내뱉었다. 히게키리는 제 입술을 툭툭 두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대강 흘려들은 이야기가 아쉬웠다.
“주인…?”
히게키리는 문 쪽을 돌아보았다. 길게 넘어가는 해를 등진 채 선 남사가 하나.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쟁반을 들고 천을 뒤집어쓰고 있다. 천 아래 가려진 금발은 윤이 돌았고, 새파란 눈은 보기만 해도 청명하다. 그녀의 집무실에 히게키리가 있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히게키리는 눈매를 휘어 웃었다.
“쉿. 자고 있단다.”
“저녁 준비가 끝나서, 데리러 왔다만….”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의외로 또렷하다. 히게키리는 그녀가 제 손을 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하지만.”
“……포대기?”
그녀가 굼질굼질 다다미에 머리를 비볐다. 히게키리는 엉클어지기 바쁜 머리를 가볍게 손끝으로 눌러 저지했다. 그녀가 히게키리의 손을 쥔 채 고양이마냥 팔을 쭉쭉 뻗었다. 힘껏 뻗더니 그대로 늘어져 침이 흐른 입가를 소매로 문지르는 모습이 아가씨보다는 아저씨에 가까웠다.
“어, 히게키리. 어? 내가 왜 잡고 있지.”
그녀는 스트레칭을 하다 손에 쥔 온기에 신경이 닿았는지 잠에 덜 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히게키리는 마냥 방싯 웃었고, 그녀는 그의 손을 잡은 제 손을 번갈아 보았다. 히게키리 너머로 머뭇거리는 야만바기리가 문득 시야에 박혔다.
“그거― 뭐야?”
그녀가 히게키리의 손을 놓으며 엉금엉금 기었다. 야만바기리는 그런 그녀 근처로 다가가 쟁반을 내려놓았다. 길쭉한 유리컵에 담긴 얼음이 부딪히며 챙강 소리가 났다. 야만바기리는 컵을 내밀었다.
“오늘 제법 더웠는데, 간식을 먹으러 오지 않았다고 들어서. 그―, 매실냉차다.”
“아, 마침 목 말랐어.”
그녀가 마른입을 다시며 냉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관자놀이로 찡하게 감각이 올라왔지만, 목을 타고 내려가는 시고 단 맛이 달가웠다.
“주인,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는구나.”
“아, 오늘 저녁 새우 튀김이랬는데.”
그녀가 느릿느릿 일어섰다. 야만바기리를 지나치려던 찰나, 문득 그녀가 엉망진창인 몰골로 물었다.
“포대기야, 나한테 할 말 없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야만바기리가 고개를 저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살피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분 탓인가….”
야만바기리는 설렁설렁 걸어 나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히게키리, 당신은….”
야만바기리는 방 안에 남은 히게키리를 돌아보다 몸을 굳혔다. 웃음기 사라진 입매와 달리 한껏 휘어진 금안 아래 어둑한 그림자가 들어차 있었다.
“오니가 되어 버릴 텐데.”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히게키리 또한 방을 비척비척 나섰다. 야만바기리는 괜한 불안감에 제 가슴을 툭툭 쳤다.
그녀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오늘 저녁은 새우튀김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