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난무/검*사니 전력

[검*사니]전력 : 행복의 형태

달月 2018. 5. 14. 03:11


+) 2018.05.14


+) 전력 시간에 맞추기를 포기한 자의 글입니다.


+) 약간 의식의 흐름으로 쓴 거라 그러려니 해주십셔.. 힠놈의 글을 읽는다는 건 그런 겁니다(뻔뻔


+) 검사니, 지정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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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3

전력:행복의 형태




본인은 게을렀다. 딱히 다른 사람들의 지적 없이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열정적인 생활은 아니었다. 적당히 어울리되 귀찮으면 빠졌다. 뚜렷한 목표나 희망사항도 없다. 그렇다고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하거나 무기력 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랬을 거다. 그렇다고 죽는 게 무섭지는 않았다. 별개로 아플 것 같기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픈 것이 싫어 적당히 몸을 사리고 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자신과 다르게 주변 동기들은 하고픈 것도 많고 의욕도 많았던 것도 같다.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알게 뭔가. 동기들은 “나는 이게 너무 하고 싶어.”, “난 꼭 무엇이 될 거야.”와 같은 말을 달고 살았다. 강하게 바라는 소망이나 희망을 가지고 움직이는 건 대체 무슨 기분일까. 무슨 생각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막연히 당연히 다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유일하게 즐긴 것은 책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엔 앉은 자리에서 종류와 무관하게 책을 쌓아두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기억에 남는 책을 말하라고 한다면, 글쎼. 솔직히 추천할만한 고전은 없었던 것 같다. 닥치는 대로 읽다보니 만화도 읽기 시작했다. 현실에 없을 이야기들에 푹 빠졌지만, 시간과 현실은 아이의 성장을 마냥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후는 뭐, 빤하다. 적당히 성적을 받고, 성적에 맞는 학교를 찾아 진학을 하고, 적당히 편식하며 공부를 하고. 그래서 지금의 자신이 매우 신기하다. 만화책을 손에 쥔 어린 자신에게, 너에게도 그런 판타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이나 받겠지만.


의식주에 걱정이 없다는 말에 혹한 것도 사실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시작한 것도 맞다. 서툰 일처리를 탓하려면 이런 초보자를 마냥 데려다 넣은 놈들의 잘못이지, 조건에 혹해 들어온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이거다. 지금 생각하니 의욕 없이 하던 것치곤 열심히 하기는 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환경은 상당히 버거웠다. 움직이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세계란, 그런 것이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오로지 스스로가 선택하고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그래, 바로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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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연기가 마른 바람을 타고 날았다. 습한 나무가 탈 때 나는 시커먼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드문드문 불씨가 검은 기둥에서 기세 좋게 튀었다. 거대한 성채이기도 한 혼마루의 별채와 마구간 등은 이미 못쓰게 되었다. 본채도 반쯤은 부서지고 불에 그슬려 흉가와 같은 몰골이었다.


무너진 기둥 앞에 선 장정 수십이 망부석마냥 굳어있었다. 예기치 못한 급습으로 인한 호출이었다. 연락을 위한 콘노스케 및 정부의 식신을 제외한 모든 남사들의 출진 명령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전국적인 명령을 받고 긴급하게 움직이던 때에, 긴급 귀환 명령이 떨어졌다. 우두머리를 치기 위한 전략이었다며, 몇몇 나라에 적을 둔 남사들은 시급히 귀환하란 비명 같은 명령이었다. 해당 국가의 도검남사들은 긴장과 공포로 얼굴이 질려, 황급히 귀환했다. 그들 또한 귀환 명령을 받은 남사들이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본성이 불타오르는 모습은 참혹했다. 밭의 작물은 불타 쓰러졌고, 가축들은 죽어나자빠졌다. 푸릇한 잔디나, 곧 개화할 수국 정원은 꺾이고 짓밟혀 시들었다. 혼마루의 상태는 곧 관리자, 사니와의 상태와 같았다.


불타는 장소를 향해 몇몇 검들이 황급히 뛰어들었다. 과거, 지독한 화마를 경험했던 검들이었다. 그 뒤를 이어 남사들은 각각 무리를 지어 흩어졌다. 숨조차 멈춘 채 핏발 선 눈으로 뛰쳐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츠쿠모가미보다 악귀의 형상에 가까웠다. 그들은 채 도망가지 못한 역행군의 피륙을 베고, 뼈를 부수고, 살을 으겠다. 적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후, 그들은 주저앉을 새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남사들에게 붙은 콘노스케가 제자리에서 펄쩍 몸을 날렸다. 대롱여우는 부서진 기둥 틈으로 쑥 들어갔다. 남사들은 급히 여우의 뒤를 따라 기둥을 치우기 시작했다. 마음은 급했으나 불길에 스러진 기둥과 천장이 무너질까 마냥 날려버릴 수도 없었다. 한시가 급했지만 겨우 거슬림 없이 내부를 볼 만한 구멍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다행히 구멍과 멀지 않은 거리에 콘노스케 두 마리가 보였다.



“주인! 어디니!”



널브러진 콘노스케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사니와, 님은…없, 캐앵. 없습니다. 몸을 피하시라, 하였는데….”



남사들의 안색이 시꺼멓게 죽었다.



이대로 찾지 못한다면, 사니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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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빡 젖은 수국의 모양이 제법 좋다. 이대로 마르지만 않는다면 곧 활짝 필 것 같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공기가 맑으니, 이불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사치를 부렸다. 뭐, 지금은 움직이고 싶어도 못 움직인다에 가까웠지만.


살면서 주마등을 겪을 일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험한 꼴을 볼 정도로 오래 산 건 아닌데. 그녀는 입을 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얌전히 드러누워 게으른 것은 좋지만,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 고통스럽다. 게다가 움직이지 못하게 감시하는 인원도 있으니.



“당신이 이리 얌전히 계신 건 처음 보는 것 같군요.”



가시 돋친 말에 얼굴을 비스듬히 틀었다. 색이 다른 눈동자가 마냥 서늘하다. 화가 난 걸까. 저들의 감정선을 이해하려면 심적 소모가 크다. 애초에 카미사마가 아닌가. 짐작하느니 묻는 게 빠르다.



“소우.”


“네.”


“목말라.”


“…….”



그는 뭘 바란 걸까. 두꺼운 얼음이 쩡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 심기를 알려면 물어봐야한다지만 굳이 알려고 물어볼 필요는 없잖은가. 애초에 그녀는 세심한 성격이 못된다. 소우자 사몬지는 입가를 실룩이면서도 물에 적인 수건을 그녀의 입에 물렸다. 감질맛이 나지만, 현재 목 아래로 꼼짝도 못하니 적신 수건만이 최선이었다.


그녀는 새카만 눈으로 문 밖 수국을 보았다. 그 주변에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지만 굳이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문득 반가운 마음이 들고, 조금쯤은 그때 죽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도 슬쩍 들었다.


마땅한 목표 없이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대충 산다 하지만.



“…행복한 걸지도.”



이것이 행복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