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난무/검*사니

[히게사니] 시작

달月 2018. 6. 10. 23:57


+) 18.06.10


+) 원래 검사니 전력 주제 "나이" 에서 시작했는데 아무리 봐도 나이랑 상관 없어져서 따로 업로드()


+) 히게>>>사니의 시작


+) 키워드 : 매화, 히게사니, 될 성 부른 사자는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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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매화가 흐드러졌다. 뚜렷한 붉은빛을 머금은 홍매화가 진한 향을 흔들었다. 봄을 반기는 꽃은 향이 없는데 반해, 겨울 끄트머리를 보내는 꽃은 이리도 짙은 향이 났다.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면, 이맘 때였던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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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연연해할 것 없는 츠쿠모가미는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쐰 참이었다. 어느 계기였는지는 모르나, 그의 본신이 있는 신사에서 전시를 명목으로 여러 보물을 내보인 시기였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났지만 겨울은 끝나지 않은 날이었다. 찬 공기가 매화향 사이를 그득하게 채운 경내가 묘한 온기를 품은 것도 같았다. 신사 내부라면 영체는 꽤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었다.


그는 문득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했다. 생각은 곧 행동이 되었다. 그는 어렵지 않게 몸을 일으켜 걸음을 사뿐히 내딛었다. 매화 핀 나뭇가지를 똑 꺾어들고 사이를 거닐어 본전에 향하니, 원을 비는 사람들로 본전이 복작였다. 부적 파는 신사의 인원도 한가해 보이지는 않았다. 부적을 사기 위해 늘어선 줄이 뱀마냥 길었다. 간만의 인간 구경인 탓인가. 소란스러운 군중은 썩 그의 흥미를 끌었다.



“아랴.”



짙은 꽃향기 사이로도 존재감이 선명한 향이 후각에 잡혔다. 향을 따라 걸으니, 마악 본전함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여성이 보였다. 히게키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여성 옆에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함께. 부부인가? 히게키리는 평소와 달리 참배하는 부부를 유심히 살폈다. 신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향기의 근원이 무엇일까.



“둘…, 아니. 셋?”



여성의 안에 자리잡은 씨앗. 아하, 저것이로구나. 향기의 근원을 알아챈 히게키리가 입꼬리를 쭉 끌어올렸다. 선물로 삼을 것도 쥐고 있겠다, 어여쁜 이에게 선물을 주어야지. 부부는 기도가 끝난 참인지 몸을 돌려 인파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히게키리는 가볍게 부부, 여성의 곁을 지나며 속삭였다.



“이렇게 눈을 끈 것도 연이니, 귀하고 어여쁘게 꽃피우렴.”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짙은 매화향이 스친다. 여성은 가볍게 재채기를 했다. 몸이 식은 탓이라며 목도리를 훌훌 벗는 남자를 보며 웃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보, 그건 언제 꺾었어?”



남자는 아내에게 목도리를 매어주다 고개를 기울였다. 여자는 남자가 가리키는 제 가방을 보았다.



“어머?”



그녀의 가방 뒤편으로 매화꽃이 흐드러진 나뭇가지가 빼꼼히 꽂혀있었다. 여자 또한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이제 웬 거람?


히게키리는 본전 지붕 위에 오른 채 당황한 부부를 보았다.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그의 혼잣말에 답하듯, 가느다란 바람을 따라 기분 좋은 향기가 휙 맴돌았다. 매화꽃이 질 즈음, 아마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 갈테지.


히게키리는 간만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직 잠든 숨결의 안녕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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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게키리는 찻잔을 손에 쥐었다. 손을 덥히는 온기가 기꺼웠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사이에 기척이 가까워졌다. 간만에 잔을 둘 가져오고 싶더니만. 컵에 가려진 입매에 미소가 달렸다.



“사자, 혼자서 뭐해?”



고저 없는 목소리가 히게키리를 불렀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둘만 있을 때 그를 사자라고 부르곤 했다. 아마 그의 과거 이름에서 따온 별칭이라 생각하지만, 이름이야 붙이는 주인에 따라가는 법이다.



“아랴, 그러는 주인은?”


“산책.”


“숨바꼭질이 아니고?”


“나는 산책이야.”


“그렇담 차나 한 잔 어떠니?”


히게키리는 마시기 좋게 식은 찻잔을 가리켰다. 그녀는 차의 온도를 가늠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냉큼 곁에 앉았다. 적당히 따끈한 잔, 만개한 매화나무, 그 사이로 뚜렷하게 피어오르는 향기.



“매화네.”


“아랴, 좋아하니?”


“좋아한다…기보다는.”



부모님한테 재밌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녀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히게키리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이야기를 가다듬는지 허공을 한 번, 찻잔을 한 번 보았다.



“별 건 아니고. 부모님이 신사에 아이를 기원하러 갔다 오는 길에 꺾은 적 없는 매화 나뭇가지가 가방에 들어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신기한 게, 그 나무에 달린 매화가 향이 스러질 쯤에 내가 생겼다고 진단을 받았다던가. 뭐, 우연의 일치 같은 거겠지만.”



그녀의 말을 듣던 히게키리에게 그때의 기억이 스쳤다.



바글거리는 본전, 간만의 변덕, 참배하던 부부,


잠든 씨앗에게 주었던 선물.



히게키리가 눈을 깜박였다. 반짝이는 금안에 무덤덤하게 차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담겼다. 히게키리는 몸을 숙여 그녀에게 코를 가져다 대었다. 여태껏 어찌 몰랐을까. 매화향과 다른, 과거에 맡았던 향기가 피어올랐다. 신의 걸음을 멈추고 변덕을 일으켰던 그 향이었다.



“…어제 머리 안 감았는데.”



그녀의 말이 그의 상념을 일깨웠다. 그녀는 이상한 것을 보듯 미간을 약하게 찡그리다 문득 깨달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동물에게는 악취가 향수랬던가.”



히게키리는 오해를 굳이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제가 먹으려 했던 화과자를 그녀에게 내밀며 웃었다. 동물이 구애하듯.



바야흐로,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