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난무/미카른

[다테조미카] 검은 나무 숲의 마물

달月 2018. 8. 6. 19:05


+) 2018.08.06


+) 루팡하고 싶어서 받았던 다테조*미카즈키입니다.


+) 예전에 다른 장르로 구상했던 건데 이렇게 쓰게 되는군요....


+) 뭔가 설화 같은 느낌으로 쓰고 싶었는데 장렬하게 실패!<


+) 키워드 : 다테미카, 다테조, 미카른, 옛날 옛날에



= = = = = = = = = = = = = = =



때때로 우화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구전된 이야기 대부분은 허황된 이야기라 하니, 그 안에 진실이 한 조각 섞여 들어갔다고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다.


커다란 산 아래 공동에 생긴 마을에도 없을 법한 이야기 한둘이 구전으로 떠돌았다. 변변한 놀이가 없는 작은 마을에 흥미로운 소재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아이들의 좋은 놀잇감이었다.




굽이굽이 산을 넘고 물을 넘으면


입이 떡 벌어지게 커다란 숲을 볼 수 있다네


커다란 숲은 넓고 커서 길을 잃을 지도 몰라


하지만 길을 잃으면 안 돼


커다란 숲에서 길을 잃으면 안돼


커다란 숲에는 검은 나무 숲이 있으니까


검은 나무는 악마의 나무


누구든 그 숲에 들어갔다 살아 나온 이 없다네




아이들은 뜻도 모른 채 떼 지어 노래를 불렀다. 그런 아이들의 뒤로 청년 하나가 뒤따랐다. 홀어미를 부양하는 마을 어귀의 나무꾼이었다. 어릴 적 사냥을 하다 바위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다친 후로 지능의 성장이 멈추었다 했다. 그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무를 하기 위해 마을 경계를 넘어 산을 올랐다. 근처 나무는 마르고 죽은 나무가 없어 슬슬 멀리 나가야할 참이었다. 나무꾼은 입을 벌린 채 머리를 긁적였다. 어미에게 따뜻한 죽이라도 먹이려면 나무를 실하게 채우고, 동네 사람들이 요구한 땔감도 해다 주어야 했다. 자신은 모자라지만,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 덕에 배 곯지 않고 죽이라도 먹으며 살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을 사람들과 다리가 불편한 어미를 위해 그가 열심히 나무를 해야 했다. 꽤 열심히 인근의 야산을 뒤졌지만 쓸만한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꾼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어라, 바보 아냐?”



나무꾼이 고개를 들었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가던 사내 둘이 키들거리고 있었다. 분명 촌장의 조카인 약초꾼이었다. 나무꾼은 헤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약초꾼 둘은 가시나무를 요리조리 피해 나무꾼에게 다가왔다.



, 안녕.”


바보가 여기까진 웬일이야?”


, 나무하러. 그런데, 없어. 여기.”



나무꾼이 띄엄띄엄 말했다. 주어가 빠지긴 했으나 그의 일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약초꾼들은 겉으로 웃는 척 속으로 혀를 찼다. 모자란 놈. 나무꾼이 나무를 하지 않으면 마을의 땔감이 부족하다. 곡식 두어줌에도 감사해하는 좋은 일꾼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모자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득, 약초꾼은 작은 심술이 돋아 제 형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땔감이라면 요 산 넘어 뒤편에 많은데.”


, 방금 보고 온 그거? 그렇지. 약초는 없어서 우리는 허탕이었지만.”



척하면 척이었다. 약초꾼 둘은 빙글빙글 웃으며 선심 쓰는 척, 나무꾼에게 속삭였다. 나무꾼의 귀가 솔깃했다. 여름이라 해도 길겠다, 지금부터 바지런히 산을 넘으면 저녁 즈음에는 돌아올 수 있으리라. 다만 걱정인 것은 어미의 저녁을 챙기지 못하는 것이다. 약초꾼은 우물쭈물하는 나무꾼을 보며 선심 쓴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는 마을로 돌아가는 중이니까 네가 늦을지도 모른다고 전해줄게.”


, 정말?”


우리도 네 덕에 따뜻하게 불지피고 사는데 그 정도야, .”


, 고마, 고마워.”



나무꾼은 약초꾼 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곤 후다닥 산을 올랐다. 이렇게 마을 인심이 좋아 다행이다. 약초꾼은 저런 바보가 어디 없을 거라며 깔깔 비웃었다. 노인에게 바보 나무꾼이 늦을 거란 소식은, , 까먹지 않으면 전하고. 약초꾼 둘은 시시덕거리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아이고, 재미없어.”



챙 넓은 모자를 쓴 채 잡초를 뽑던 청년이 흙바닥에 주저 앉았다. 입고 있는 흰 옷에 먼지가 묻는 건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널부러지는지. 곁에서 잡초를 뽑던 소년이 혀를 쯧쯧 찼다.



츠루마루 씨, 그러고 있으면 오늘 일은 안 끝나잖아.”


꼬맹아, 이런 반복 작업만 하니 무슨 재미가 있냐.”


일을 재미로 해?”


그럼 재미도 없는데 왜 해?”


왜 하긴.”



소년이 고갯짓을 했다. 흰 옷을 입은 청년, 츠루마루는 입을 삐죽거렸다. 누가 정말 이유를 몰라서 그러는 줄 아나. 츠루마루는 투덜거리면서도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앞마당 반만큼은 했으니 내일이나 모레 즈음에는 말끔해지리라. 츠루마루는 제 옷은 흙먼지가 묻어도 의 신발에는 흙 한 톨 묻지 말기를 바랐다. 세상 곱고 좋은 것만 이곳에서 보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그 마음은 츠루마루 뿐만 아니라 이 구역에 사는 그들 또한 같을 것이다. 츠루마루는 반쯤 무념무상으로 풀을 뽑기 시작했다.



, 츠루마루 씨.”


?”


밋쨩이랑 카라쨩은?”


식사거리 찾으러 갔겠지.”


그래?”


애들도 아니고 적당히 올 건데 묻기는



츠루마루는 손을 건성으로 흔들었다. 어차피 여기, ‘검은 나무 숲에 올 멍청한 것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츠루마루 씨.”


, .”


없어졌는데.”


뭐가, ……?”


그 새 어디 갔나 봐.”



태평한 소년의 말에 츠루마루는 흙투성이 손으로 이마를 치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 




나무꾼은 산을 바지런히 넘었다. 목이 마른 참에 보인 강물이 달았다. 산등성이를 바지런히 넘은 탓인가, 아직 해는 중천이었다. 땔감이 있는 곳만 바르게 찾으면 저녁 전에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무꾼은 바지를 둘둘 걷어 강을 조심조심 건넜다. 그리고 환희했다. 약초꾼들의 말대로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들이 많았다. 대충 긁어도 마을 사람들에게 줄 것과 집에 들고 갈 분량이 충분해 보였다. 나무꾼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른 땔붙이를 주섬주섬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흥이 오른 탓인가, 평소보다 지게에 얹은 땔감이 머리 둘은 더 높았다. 나무꾼은 지게에 얹은 땔감을 칡넝쿨로 단단히 옭아 맸다. 한숨 돌린 덕에 나무꾼은 강에서 땀을 식히고 주변에 열린 산열매와 강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아직 해가 높으니 조금 더 쉬다 가도 될 참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알록달록한 것이 눈에 띄었다.


한여름 푸르기만 할 숲에 무언가 싶어 가까이 가니, 번쩍이는 돌 옆으로 꽃무리가 알록달록했다. 생각해보니 어미의 다리가 불편한 뒤로 고운 꽃 구경 한 번 못 시켜드렸다. 나무꾼은 조심조심 예쁘게 핀 꽃을 꺾어 아이 머리통 만한 꽃다발을 모았다. 근처 너덜거리는 나무줄기를 벗겨 꽃줄기를 꽁꽁 묶었다. 어설픈 다발이었으나 나무꾼은 어미가 기뻐할 생각에 히히 웃었다. 다만, 꽃다발을 만드느라 제가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모른 것이 그의 불행이었다.



?”



수풀 너머로 장신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숲과 어울리지 않게 귀티가 나는 사내였다. 나무꾼은 생전 저렇게 멋들어진 사내는 처음 보았다. 사내는 긴 다리를 뻗어 나무꾼에게 다가갔다. 사내의 눈은 노랗게 빛이 났다. 마을 밖으로 시집 간 촌장의 첫째딸이 혼수로 받았던 것 중 사내의 눈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호칭은 잊었으나, 매우 귀중한 것이라 하였다. 그런 귀한 색을 가진 사람이니 당연히 높은 사람일 것이다. 나무꾼은 문득 등골이 서늘해졌음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해가 중천이었는데. 나무꾼의 입이 당황으로 헤 벌어졌다.


나무꾼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맵시 나게 옷을 차려 입은 사내가 나무꾼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낯선 인기척이 있길래 왔더니 웬 인간이람. 사내, 쇼쿠다이키리는 드물게 미간을 찌푸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마물인가 싶었더니 인간이다. 그것도 덜 떨어진. 인근에 인간 냄새는 맡은 적이 없었는데, 어지간히 멀리서 온 모양이었다. 아니면 숲길을 들었던가. 먹이로 삼기엔 나쁘지 않았으나 굳이 먹이로 삼을 정도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이 이 장소를 욕심 내어 들어온 것은 용서하지 못할 일이다.


어떻게 본보기를 보일까. 샛노란 동공이 고양이처럼 가늘게 찢어질 쯤이었다.



미츠타다.”



제 목숨이 위험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무꾼은 또 다른 기척에 입을 다물었다. 장신의 사내 뒤로 짙은 피부를 가진 청년이 걸어 나왔다. 나른하게 늘어진 눈꼬리가 어딘가 묘한 감상을 일으키는 미청년이었다. 마을에서 내노라 하는 미남도 저렇게 잘나지 않았다. 나무꾼의 입이 다시 헤 벌어졌다.



카라쨩.”


“….인간?”


으음, 슬슬 한 번 욕심 낼 인간이 올 때가 되기는 했지.”


“…….”



미청년 또한 눈이 샛노랬다. 사내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만 고귀한 느낌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붉은 옷을 입은 청년은 나무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분명 고귀한 색인데, 청년의 눈이 파충류의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나무꾼은 속으로 덜덜 떨면서도 손에 쥔 꽃다발을 놓지 못했다.


청년의 시선이 나무꾼이 들고 있는 꽃다발에 닿았다. 나무꾼은 그제야 이들의 사유지를 침범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자신을 보는 이유도 처분을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높은 분들은 기분에 따라 아랫것을 다룬단 소리를 얼핏 들은 것도 같다. 나무꾼은 홀로 남을 어미를 생각하며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 잘못, 잘못했어.”



나무꾼은 배움이 짧았고, 경어를 배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죄를 하려고 애를 썼다.



, 여기가, , 산인 줄 알고. , 몰랐, . , , 꺾어서, 미안.”


흐음.”



사내가 고개를 기울였다. 청년은 그런 나무꾼을 내려보았다. 나무꾼의 등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여기에 왜 온 거지?”



븕은 옷을 입은 청년이 물었다. 나무꾼은 여전히 머리를 처박은 채 숲 밖에 있을 지게 쪽을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 나무. 나무, 주우러. 죽은 나무.”



문장이 연결되지는 않았으나 이유는 알 법 했다. 청년이 사내를 돌아보았다. 사내 또한 어깨를 으쓱였다. 나무꾼이 가리킨 방향에는 정직하게 마른 나무가 한가득 올라간 지게가 보였다. 그제야 검은 옷을 입은 사내의 기세가 줄었다. 나무꾼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악의나 욕심이 있는 인간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사, 욕심이 있다면 꽃다발을 만들기보다 꽃밭 옆에 돌멩이처럼 널브러진 보석을 주웠겠지만. 그래도 순순히 돌려보내기엔 본보기가 되지 않는다. 이걸 어쩐다.



여기 있었구나.”



다정하고 보드라운 목소리였다. 나무꾼은 두려움을 이기고 시선을 슬쩍 올렸다. 온 세상 부드러운 꽃잎을 모으면 저러할까. 나무꾼은 두려운 와중에도 그리 생각했다. 눈이 멀 것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무꾼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미카즈키.”


여기까지 혼자 온 거야?”



청년과 사내의 기운이 수그러들었다. 상냥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미청년에게 손을 뻗는 그들은 고귀한 여왕과 그를 지키는 기사 같았다. 나무꾼은 멍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림을 현실로 빼낸 것 같은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아름다운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나무꾼은 미소를 마주하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절대적인 무언가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미카즈키.”



붉은 옷의 청년이 못마땅한 듯 그를 불렀다. 아름다운 사람의 이름이 미카즈키인 모양이다. 하늘에 뜬 달처럼. 외모와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인간은 처음 보는 구나.”



미카즈키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나무꾼을 보았다. 청년과 사내는 못마땅한 얼굴로 나무꾼을 보았다. 본보기고 뭐고 적당히 쫓아낼 것을, 괜한 관심을 주게 만들었다.


미카즈키는 종종걸음으로 나무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에게 풍기는 향이 어느 꽃보다 달았다. 나무꾼의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미카즈키는 나무꾼 손에 들린 꽃다발을 보더니 물었다.



아가, 그 꽃은 웬 거니?”


, 엄마. 주려고. , 못 봐서. 엄마, 좋아해. .”


아하, 어미에게 주려고? 그럴 거면 저기 있는 것을 가져가지 않고.”



미카즈키는 다정히 웃으며 꽃 주변에 굴러다니는 보석을 가르켰다. 나무꾼은 반짝이는 돌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저런 돌멩이는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빛나는 돌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돌은 먹을 수도 없는 것을. 미카즈키는 나무꾼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짙은 나무색깔 눈이 긴장으로 꿈벅였다.



선한 아이구나.”



미카즈키는 눈을 휘어 웃었다. 미카즈키가 웃으니 나무꾼도 헤헤 웃었다. 미인이 웃으니 더 예뻤다. 미카즈키는 나무꾼이 마음에 들었다. 저를 보고도 딴 생각에 빠지지 않고, 제가 아는 한에 욕심을 부렸고, 그나마도 어미를 위한 것이라니. 처음 보는 것이 선하고 깨끗하니 이유 없이 마음이 즐거웠다.



아가, 필요한 건 없니?”



미카즈키는 아이에게 선심을 베풀기로 했다. 청년과 사내는 마음에 안 드는 듯 보였으나 끼어들지는 않았다. 미카즈키의 웃음에 나무꾼이 더듬더듬 말했다.



, 여기, 여기는, , 거야?”


, 이 숲. 나아가 발 닿는 것이 다 내 것이지.”



오만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무꾼의 세계는 좁았고, 눈 앞의 미인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무꾼은 더듬더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저기. 저기에, , 나무. , 죽은 거만. 주웠는데, , 조금 많아. , 너 거인 줄, , 몰랐, . , 저거, 나무. , 나 줘.”


나무?”



미카즈키가 뒤를 돌아보았다. 사내와 청년이 강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강에 세워 둔 지게를 말하는 거 같은데. 거기 있는 나무라고 해도, 다 죽은 거고.”


땔감을 찾으러 왔다고.”


아하.”



미카즈키는 나무꾼의 말에 웃음지었다.



으음, 어쩔까. 아가, 나무가 필요한 거니?”


, 나무. 필요해. 나무, 주면, , 먹을 거, 주니까.”


그렇구나. 그렇담 내 귀한 나무를 주마.”



미카즈키가 몸을 일으키더니 근처 나무를 기웃거렸다. 나무꾼은 미카즈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미카즈키는 근처 나무를 보더니 검은 나무를 하나 뚝 잘라 나무꾼에게 건넸다.



검은 나무란다. 내 알기로 인간들이 귀하게 여기는 나무라지. 아가에게 주마.”



나무꾼은 미카즈키의 손에서 나무토막을 받았다. 갓난아기만한 나무토막은 생각 외로 묵직했다. 미카즈키는 바닥의 돌멩이를 몇 점 주워 작은 천주머니에 담아 나무꾼의 허리춤에 달아주었다.



착한 아이에게는 응당 상을 주어야지.”



미카즈키가 나무꾼을 보며 웃음지었다. 아름답고 요요한 미소에 홀린 듯, 나무꾼은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 




무슨 생각이야?”



붉은 옷의 청년이 불만 어린 물음을 뱉었다. 그는 진중한 듯 다혈질인 구석이 있었다. 미카즈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방글방글 웃었다. 검은 옷의 사내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차라리 다리를 분질러 보내지 그랬어.”


다리를? 그 착한 아이에게?”



미카즈키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정말 놀란 기색이라 사내, 미츠타다는 턱을 긁적였다. 저렇게 반문한다지만 미카즈키의 속내를 쉬이 읽을 수 없다. 검은 나무 숲의 지배자는 아름답고, 강하고, 또 변덕스러운 존재였다. 수풀을 밟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걸음을 내딛던 미카즈키는 돌연 팔을 뻗었다.



걷기 싫구나. 쿠리카라야, 안아주어.”



붉은 옷의 청년은 순순히 팔을 뻗어 미카즈키를 안아 들었다. 쿠리카라가 미카즈키를 안자 마자 미카즈키의 몸이 줄어들었다. 이내 열 살 안팎이나 될 법한 아이가 된 미카즈키는 쿠리카라의 품에서 발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미츠타다는 그런 미카즈키의 발에서 헐렁하게 흔들리는 신발을 잡아 들었다. 미카즈키는 눈을 휘어 웃더니 문득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다무네야, 방금 전 아가를 잘 배웅해주련?”


어딜 갔나 했더니 그새 경계까지 간 거야? 게다가 나보고 인간을 배웅하라고?”



높다란 나무에서 소년이 훌쩍 뛰어내렸다. 크고 동글동글한 황금안이 불만으로 번들거렸다. 미카즈키는 생글거리며 소년의 머리를 토닥였고, 소년은 입을 삐죽였다. 그런 소년 뒤로 흰 옷을 입은 청년이 뛰어내렸다.



미카즈키, 어딜 가면 간다고 말을 좀 하라고.”


하하, 츠루가 아니냐. 오늘은 빨갛지 않고 흙으로 검어졌어.”


이게 뉘 탓인데. 그래서 인간을 살려 보냈어?”


처음 본 인간이 선하고 어여뻤단다.”


얼씨구. 그래서 보석에 검은 나무까지 들려 보내고?”


착한 아이에게는 상을 주어야지. 사다무네야, 그 아이가 마을로 무사히 돌아가게 배웅을 해주렴.”


난 싫어.”


으음, 어쩔 수 없구나. 미츠타다.”


미카즈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미츠타다는 한숨을 쥐며 미카즈키의 작은 손을 잡아 정중히 입맞추었다.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



미츠타다는 어둠보다 검은 까마귀가 되어 날아올랐다. 성격 한 번 좋다며 츠루마루가 미츠타다를 비웃었다. 사다무네는 미카즈키의 발에 묻은 흙을 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미카즈키, 정말 무슨 생각인 거야?”


착한 아이에게 주는 상이래도.”



미카즈키는 그저 웃으며 그리 속삭였다. 검은 나무 숲의 지배자는 아름답고, 강하지만, 역시 속을 알 수 없는 변덕스러운 자였다.




> 




나무꾼은 눈을 꿈벅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사람이 눈 앞에 있었는데. 분명 아름다운 사람이 잘 가라며 인사를 했고, 눈을 뜨니 마을과 가까운 산등성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나 허리춤에 달린 작은 주머니나 품에 안은 검은 나무 토막으로 보아, 꿈은 아니었다. 나무꾼은 흥에 겨워 산등성이를 폴짝폴짝 뛰어내려갔다.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도 생겼고, 무언지는 몰라도 귀한 것이라 챙겨준 것을 팔면 어미에게 좋은 것을 해다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겅중겅중 뛰어 내려가던 나무꾼이 약초꾼들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본래라면 그들과 마주할 수 없음에도 나무꾼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무꾼은 발걸음도 가볍게 약초꾼들에게 다가가 반가이 인사했다. 나무꾼의 인사에 약초꾼들은 희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나무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쩐지 약초꾼들의 얼굴이 묘하게 나이 들어 보이는 참이었다.



으응?”



나무꾼이 의아해하던 중이었다. 약초꾼은 그가 품에 안은 것에 시선이 닿았다. 나무토막이 껍질뿐만 아니라 속까지 검었다. 부르는 것이 값인 검은 나무, 마목임이 틀림없었다. 저런 바보가 마물을 두고 저걸 가져올 수 있다고? 분명 요행일 것이다. 약초꾼은 동료의 허리춤을 팔꿈치로 쿡 찔렀다. 그 또한 나무꾼이 품에 안은 나무에 시선이 닿았다. 저 바보는 나무의 가치를 모를 것이다. 고기 두어 근에 곡식 한 가마니쯤 주면 좋다고 펄떡펄떡 뛸 게 분명하다. 저 바보는 나무를 하러 간 후 십 년이 지났다는 것도 모른다. 제 어미는 오지 않는 바보 자식을 기다리다 굶어 죽은 지 벌써 오 년도 더 되었다. 마을은 시체 썩는 냄새를 맡고 노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고, 마을 바깥에 대충 뼈를 염하여 작은 돌무덤을 만들고 말았다. 어차피 바보를 반길 마을 사람은 없다. 저 마목, 검은 나무만 있다면 마을이 더 풍족할 수 있었다. 약초꾼은 멍하니 허리춤에 매단 낫을 매만졌다.



, 선물. 선물, 받았어. , . 반짝, 반짝.”



나무꾼은 허리춤을 뒤적여 작은 주머니에서 돌을 꺼냈다. 나무꾼 딴에는 나무를 풍족하게 하게 해준 약초꾼들이 고마워서 주는 선물이었다. 나무꾼이 내민 돌을 받고 약초꾼들의 눈이 크게 홉뜨였다. 나무꾼이 준 돌멩이는 보석이었다. 그것도 아기 주먹만한 것이었다. 뭘 모르는 그들 눈에도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 나무꾼은 멋도 모르고 헤헤 웃고 있었다. 얼른 어미가 있을 집에 가겠다며 나무꾼은 약초꾼들을 지나쳤다. 약초꾼들의 눈이 욕심으로 번득였다.


높은 나무, 까마귀가 소리 없이 앉아있었다. 여타 까마귀와 다른 황금색 눈동자가 나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람을 타고 피냄새가 번졌다. 까마귀는 한 점 미련 없이 날아올랐다. ‘배웅을 마쳤으니 돌아갈 시간이었다.




> 




산 넘고 강 넘어 있는 검은 나무 숲


검은 나무 숲에는 아름다운 숲의 마물이 있다네


착한 아이에게는 상을 주고


나쁜 아이에게는 벌을 주지


아름다운 마물은 변덕스럽지


마물의 자비를 빌어 살아남는다면


그 또한 복이라네


그 또한 저주라네